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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對北대화와 압력 사이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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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 사람들의 대화 속에는 항상 세 개의 대표적 인간형이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봉건 일본에서 자웅을 겨루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다.

이들의 차이는 울지 않는 새를 울게 하는 방식(전략)에 있다. 오다는 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린 반면, 도쿠가와는 울 때까지 기다렸다. 도요토미는 새가 울도록 하는 전략을 썼다. 이들 중 천하를 통일한 사람은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 도쿠가와였다.

*** 오다와 도쿠가와式 북핵 해법

아사히신문의 칼럼니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는 지금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오다와 도쿠가와 사이에 각축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워싱턴의 네오 콘(신 보수파)이 오다의 '죽이기'식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데 반해, 청와대의 '햇볕 탈레반'은 도쿠가와의 '기다리기'식 전략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쿠가와의 전략이 지금 점점 약발을 잃어가고 있는 데 있다. 왜냐하면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도요토미가 나설 차례라는 것이다. '대화와 압력'을 통해 새를 울게 하는 전략이 훨씬 바람직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와 압력'을 대북정책의 골격으로 제시했다. 이로써 그동안 표류하던 대북정책이 한.미.일 간의 '공통전략'으로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대화와 압력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에 따라 이 공통전략은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와 얘기해 보니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 盧대통령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분명 미국의 강경노선에 한발짝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盧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호감은 한국 정치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선자 시절에는 "한.미관계보다 한.일관계가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는가 하면, 지난 토요일 일본 TV와의 대화에서는 가장 가까운 우호국으로 일본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盧대통령으로서는 이러한 일본과 함께 오다를 견제하며 북핵 문제를 풀어가는 도쿠가와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애초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물론 일본이 오다의 방식을 우회하여 도쿠가와 식으로 북핵 문제를 풀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병마개'를 열어주지 않자 우리의' 추가적 조치'보다 한발 더 나간 '보다 강경한 조치'를 미국에 약속하고 나선 것이 일본이다.

여기에 국빈을 초청해 놓고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지원하기 위한 유사법제까지 통과시켰다. 불행하게도 盧대통령의 방문은 이러한 일본의 강성기류에 "좋고요, 좋고"로 맞장구친 꼴이 돼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화와 압력'으로 북한을 '울게'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북한은 지금까지 '울지' 않았고, 앞으로도 '울지' 않을지 모른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과 일본은 대화보다는 압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압력의 힘이 거세지면 도요토미의 전략은 순식간에 오다의 전략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 美.日 강경조치 가능성에 대비를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도요토미의 전략이 오다의 전략으로 바뀌는 것을 막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막지 못할 경우 우리는 마치 마녀들의 주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끌려만 다니는 맥베스의 운명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좋고요, 좋고"를 연발할 수는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본 방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盧대통령은 일단 북한에 대한 '추가적 조치'나 '보다 강경한 조치'를 막는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성공'은 지속돼야 하며, 또 이를 위해서는 도쿠가와의 외교공간이 계속 유지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북한체제가 종언을 고할 때까지 북한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