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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조] 피아노가 있는 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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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송희 시인이 초대한 방은 닫혀있다. 그 문은 꽤 오래 닫혀서 바람 불면 복도의 ‘긴 널빤지만’ 덜컹대는, 조금은 을씨년스럽고 비애가 묻어나는 방이다.

사내는 어디로 갔는지, 왜 이곳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저 남겨진 체취만으로 그를 상상할 뿐이다. 오선지에 갇혔거나 건반 위에서 길을 잃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그가 연주한 음률들은 길 잃은 새의 지저귐처럼 실내를 돌아다닌다. 빈방 창 너머엔 눈이며 겨울비가, 다시 낮달이 뜨고 진다.

 행간이 넓은 시는 상상력의 폭을 넓혀준다. 작곡가는 음표의 조합을 통해 마디를 이루고, 시조 시인은 구(句)와 구를 이어 하나의 장(章)을 완성한다. 그렇게 세상에 던져진 악보와 시는 삶의 여울을 건너다 만나는 독자의 심상 속에서 또 다른 생명으로 거듭난다. 이렇게 다가온 시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조의 미덕은 정형의 율을 갖되 음보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3장6구의 작은 초옥이지만 생각만큼은 여유롭고 활달해야 한다. 이 시조는 3수의 연시조 속에 사내의 흔적과 남겨진 피아노, 하염없는 시간과 추억을 녹여 넣었다.

어떤 주의주장 대신에 풍경 묘사만으로 줄거리를 완성하였다. 느낌도 있고 여운도 남겼다면 좋은 시조가 아닌가.

이달균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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