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술] 김광업 특별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운여(雲如) 김광업(1906~76)은 서예계에서 낯선 이름이다. 서예가라 내세우기보다 개성 넘치는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안과의사로 업을 삼고, 흥사단을 축으로 한 사회활동에 열정을 바쳤으며, 교회장로이면서 스님들과 마음을 나눈 그는 그 넉넉한 삶을 몰아 붓 한 자루에 싣다 갔다.

20일부터 7월 1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운여 김광업의 문자반야(文字般若) 세계'는 우리 나라 근.현대 서단(書壇)에 독특한 자리 하나를 남긴 그의 잊혀진 서예 작품을 돌아보는 특별전이다.

고인과 평생 교유했던 석정(石鼎) 스님이 갈무리한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소장품과 인사동 고예가(古藝家)의 수집품 2백50여 점이 '구름처럼(雲如)' 살다간 그의 맑고 시원한 선필(禪筆)을 보여준다.

김광업은 일제시대에 평양에서 5남2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건축가 김중업(1922~88)이 그의 동생이다. 51년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 와 광복동에 대명안과의원을 연 운여는 55년에는 부산 최초의 서예학원인 동명서예학원을 개설해 부산.대구 지역 서화가들의 사랑방으로 만들었다.

이 시절에 부산을 거쳐간 이들은 누구나 그의 넓은 사람됨됨이를 기억한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운여 선생은 늘 세속사에 담담하면서도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너그러운 눈길이 항상 이쪽 가슴속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있었다"고 돌아봤을 만큼 그는 자유인이었고 그의 서화는 그 자유의 소산이었다.

전시는 '은주(殷周)시대 고금문과 전서' '진한(秦漢)시대 와전문과 예서' '해서와 행초' '대자서와 파체서' '전각' '그림.서화감식.교유관계'의 여섯 분야로 이뤄졌다.

고전을 스승 삼고 선적(禪的)인 아름다움을 찾아 극단 속에서 조화를 추구했던 운여가 일군 이 방대한 서화의 숲을 거닐어보면 "글씨는 그 사람이다"라는 옛말이 절로 떠오른다.

직선과 곡선의 대비, 송곳같이 날카로운 듯하나 정신을 어루만지는 붓질 등 기법 중심에서 벗어나 필묵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던 운여의 예술세계는 불가의 선묵(禪墨)과 통했던 셈이다.

말년에 운여가 전서.예서.해서.초서의 필획과 결구를 한 화면에 녹여 쓴 파체서(破體書)에 이르면 그의 문자는 반야, 즉 세상의 진리를 인식하는 지혜로 화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큐레이터는 "운여의 특별전이 날로 박제화된 작품을 양산하고 있는 이 시대의 서예가 어디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점검하는 성찰의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2시 서울서예박물관 문화사랑방에서는 '운여 김광업의 선묵세계'를 주제로 한 석정 스님의 특강이 열린다. 02-580-1511.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