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참 고생문이 훤한 일이에요.”
입으론 ‘고생’이라 했지만 목소리는 힘찼다. 정몽준(64)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세계축구 대권에 도전한다. 정 명예회장은 “17년간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지낸 사람으로 FIFA가 전 세계적으로 부패했다는 욕을 먹는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이런 일을 해결하는 데 일조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도 “공식 출마선언이란 표현은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출마선언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언제 어디서 출마선언을 할 건가.
“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게 중요하다. 준비가 되면 유럽에서 출마선언을 할 계획이다. FIFA 본부가 스위스 취리히에 있다. FIFA 본부 기자실에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제프 블라터 회장이 허가해줄지 모르겠다.(웃음)”
-블라터 회장과 만나나.
“조만간 만나려 한다. 과거엔 블라터 회장과 술도 마시고 잘 지냈는데….”
정 명예회장은 축구계의 대표적인 반(反) 블라터 인사다. 1998년 블라터가 회장에 당선될 당시 렌나르트 요한손 후보를 지지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블라터 회장의 일방적 연맹 운영에 반대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그랬다가 2011년 블라터의 지지를 받은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에게 패해 FIFA 부회장 5회 연임에 실패했다.
-FIFA에 대한 블라터 회장의 영향력이 여전해 공정 경선이 안 될 거란 우려가 있다.
“(‘휴우’하고 한숨을 쉬며) 적절한 기회가 되면 자세한 얘길 하겠지만 내가 FIFA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고 있다.”
-경쟁자로 미셸 플라티니(60·프랑스)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알리 빈 알 후세인(40·요르단) FIFA 부회장 등이 꼽힌다.
“이번에 선거를 하는 이유는 블라터가 이끌던 FIFA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거다. 블라터 회장에게 도움 받은 사람은 안 나오는 게 좋다. 블라터가 회장에 처음 당선될 때 플라티니도 그 캠프에 있었다.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만난 플라티니에게 (농담 삼아) ‘유럽축구연맹의 예산이 더 많으니 계속 유럽연맹 회장을 하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플라티니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실제로 지난 20일 발행된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플라티니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며 그가 과거 블라터의 ‘피보호자’였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세계 곳곳을 다니며 축구계 인사들을 만났다던데.
“FIFA 집행위원이 내게 한 첫마디가 ‘(FIFA에 있으면서) 감옥에 안 간 게 다행이다’였다. 지금 FIFA 분위기가 그렇다.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한 상원의원은 ‘FIFA를 마피아에 비유하는 건 마피아에 대한 모욕이다. 마피아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부패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전 세계 누구를 만나도 FIFA가 이렇게 부패한지 몰랐다고 말한다.”
-선거 슬로건은 ‘부패와의 전쟁’인가.
“‘부패 없는 하모니의 새로운 시대’란 말을 쓰고 싶다. FIFA는 월드컵으로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내면서도 비행기 값이 없어 예선전에 못 나가는 나라를 지원해 주지 않고 있다.”
-FIFA 회장으로서 지향하는 목표는.
“209개 회원국은 모두 FIFA가 재정지원을 계속 잘해 주길 원한다. 블라터 회장은 월급과 보너스 등을 공개하지 않았고, 개인 비행기까지 썼다. 저는 안전성이 더 높은 큰 비행기를 탈 거다. 전 세계 회원국을 위해 분별력 있게 돈을 쓰는 FIFA가 돼야 한다.”
-여전히 여권 내에선 대선주자로 꼽히는데.
“(웃으며) 바닥권이라고 해야죠.”
-FIFA 회장에 도전하면 국내정치는 그만두나.
“그런 선거(총선·대선 등)는 나갈 생각이 없다. 국내에 나보다 훌륭한 분도 많다. 의원 안 하고 정치권 바깥에서 일반 국민 눈높이로 보니 ‘정치인들끼리 너무 싸운다’는 말이 이해되더라. 극단적으로 갈라서지 말고 대화로 해결했으면 좋겠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겐 FIFA 회장 출마 구상을 전했나.
“오래전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내가 당분간 국내 선거에는 나가기도 힘들고, 나갈 수도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김 대표가 ‘그러지 말고 나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던데…내심 좋아했던 거 같다.(웃음)”
-FIFA 회장을 잘하면 다시 정치인으로 기회가 올 거란 관측도 있다.
“그건 현재로선 너무 원대한 얘기라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일단 FIFA에서의 도전이 잘 될 수 있게 관심 갖고 도와달라.”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