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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립미술관에 외지인 명칭 … 안동 미술계 ‘이름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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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하종현 작가. [사진 하종현 작가]

공립 미술관 명칭에 작가의 이름을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경북 안동시가 시립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안동시립 하종현미술관’(가칭)이란 명칭을 검토하자 안동 지역 일부 미술인들이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안동시는 지난해 10월 하종현(80) 작가와 안동시립 하종현미술관 건립 협약서(MOU)를 체결했다. 건립 부지는 안동댐 월영교 인근 3400㎡로 잡았다. 하 작가는 협약서에 1970년대부터 자신의 시대별 작품 300여 점을 미술관 완공에 맞춰 기증한다고 적었다. 안동시는 이후 국비 40억원과 시비 47억원 등 총 100억원을 들여 미술관을 건립키로 하고 타당성 용역에 들어가 이달 말께 결과를 받을 예정이다. 

 하종현 작가는 누구인가.

그의 대표작인 ‘접합 92-45’. 마포에 유채, 1992년작. [사진 하종현 작가]

하 작가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홍익대 미대 학장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운영위원장 등을 지내고 현재 홍익대 명예교수로 있다. 그는 한국 단색화(모노크롬)를 대표하는 작가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작업실은 경기도 일산에 있다. 짧은 이력에서 보듯 작가는 안동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하지만 하 작가 측은 “안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작품은 마대 뒷면에 물감을 짓이겨넣는 고유한 그림이다. 하 작가의 대리인 김용섭씨는 “화풍이 하회마을 토담과 비슷하다”며 “작가는 하회마을에 매료돼 오간 지가 수십 년이 됐다”고 설명한다. 누구보다 안동의 정신적 유산을 사랑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지역 미술인들은 안동시의 계획에 일단 거부감을 나타냈다. 김강현 안동미술협회장은 지난 4일 “안동시립 하종현미술관 건립을 반대한다”는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김 회장은 “안동시와 하 작가의 MOU 체결을 뒤늦게 알았다”며 “ 지역 예술인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잘못된 시정”이라고 지적했다.

 안동미협은 “안동 미술이 그토록 보잘 것 없으며 역사도 정체성도 없는가”라며 안동에 외지인 이름을 딴 시립미술관 추진을 비판했다. 미협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이들과 면담한 자리에서 “명망 있는 작가의 그림을 기증 받으면 미술관 건립에 필요한 작품 수집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며 “안동시의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 관광 수입 등 이익이 창출된다”고 설명했다. 이름 있는 작가가 작품 300점을 기증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하 작가의 작품은 경매에서 1점에 1억∼1억5000만원을 호가한다.

 이런 가운데 지역개발연구원은 지난 15일 미술관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에 대한 중간보고회를 열었다. 여기서는 “대구시의 이우환 미술관처럼 건립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며 “지역 미술 발전을 위해 폭넓은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중간 결론을 내렸다. 조일상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좋은 작가의 작품 소장은 미술관 성격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며 “핵심은 시민의 평가”라고 말했다. 파국 대신 국면을 승화시킬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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