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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여성의 노출, 야하거나 혁명적이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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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경
화가

무덥다. 몸에 걸친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 누구나 벌거벗은 채 태어나고 죽어 염할 때 벗겨진다. 가리면서 삶이 시작되고 벗으면서 삶이 끝난다. 목욕이나 사랑을 나눌 때 벌어지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가렸을 때뿐이다.

 가리는 것과 벗는 것, 그 중간 수위가 ‘노출’이다. 최근 걸 그룹의 노출에 말이 많다. 배꼽을 드러내더니 드디어 옆트임 끈 팬티까지 등장했다. 지하철에도 허벅지 맨살을 드러낸 성미 급한 아가씨들 천지다. 그러나 노출의 기준은 완전히 벗는 게 아니다. 항상 문제 삼는 수위는 중요 부위가 얼마만큼 아찔하게 가려지느냐다.

 할리우드 유명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는 반라의 가슴에 니플패치만 붙인 채 공연한다. 23세의 그녀는 지난달 뉴욕 파티장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스스럼없이 사람들과 어울렸다. “옷의 거추장스러움을 부각하고 몸을 자연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의 자유를 역설했다”는 근사한 해석과 함께….

 지난해 6월 바젤아트페어(Art Basel)에 초대받지 않은 스위스의 행위 미술가 밀로 모이레(Milo Moir<00E9>)가 하이힐을 신고 검정 핸드백만 맨 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온 전시장을 누볐다. 그녀의 몸에는 부위마다 브라, 셔츠, 바지와 같은 단어들만 쓰여졌다. 옷으로 몸을 가리는 허위를 비꼬았다. 그녀의 천연덕스러운 돌출행동은 하나의 사건으로 비쳤고,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은 맨몸만이 아니다. 신체의 중요 부위를 가리는 속옷도 마찬가지다. 속옷의 노출은 곧 단정치 못하거나 야한 것으로 취급돼 왔다. 이 금기를 깬 인물이 레슬리 웩스너다. 그는 파산 직전의 빅토리아 시크릿을 인수해 세계 최고의 속옷 체인으로 일구었다. 그의 성공은 발상과 관점의 전환에서 비롯됐다. 그는 숨기고 가려져야 할 속옷을 드러내게 했다. 짙은 색 브라의 끈을 어깨에 노출시켰고, 여성 팬티의 아름다운 레이스를 겉옷 밖으로 드러나게 했다. 그뿐 아니라 란제리 패션쇼를 열어 여성에게 속옷은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 은근히 뽐내고 싶은 품목임을 증명했다. 웩스너에게 붙은 ‘여성의 마음을 훔친 남자’라는 별명이 전혀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혁명가가 꼭 유혈낭자한 무력시위의 현장에서만 탄생하는 게 아니다. 프랑스의 코코 샤넬(Coco Chanel)은 코르셋과 긴 치마에 갇혀 있던 유럽 여성들의 몸을 해방시킨 혁명가다. 치마의 단을 올리고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바지를 여성에게 입혀 자유로운 활동을 선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남자들은 전선에 몰려가 노동력이 부족했다. 자동차 보급으로 세상은 바뀌었다. 여성들이 공장에 가야 했고 자동차를 몰아야 했다. 이런 변화된 세상에 여성들이 합리적으로 적응하는 데 샤넬만큼 이바지한 혁명가는 찾기 어렵다.

 예술과 외설의 한계는 여전히 종잡기 힘들다. 예술의 노출은 진실을 드러내고 자유로워지려는 열망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그것이 특정한 개념과 형식 없이 까발려지고 방종하게 되면 외설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그 분수령은 어디쯤일까. 샤넬은 “럭셔리는 빈곤함의 반대말이 아니라 천박함의 반대말”이라며 “자신을 드러내는 건 사치가 아니다”고 노출을 옹호했다. 웩스너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창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성 브래지어를 개발하지 않았다. 거들도 처음 발명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그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여성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속옷을 드러나게 했을 뿐이다.”

 필자는 화가다. 자화상과 누드 크로키는 숙명이자 일상 다반사다. 스위스 모이레의 맨몸 행위예술을 일견 지지하고, 샤넬과 웩스너의 과감한 노출 발언도 옹호하는 쪽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한국에는 토플리스 해변이 없다. 토플리스 차림이 불편하다는 응답도 인도(41%)에 이어 한국(40%)이 세계 2위다. 우리는 아직 그런 나라다. 올해도 이 무더위 속에서 가려야 할 곳은 가려야 할 모양이다. 한국의 여름은 여성에게 여전히 무척 덥다.

전수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