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삶의 향기

‘의식의 흐름’을 글로 한번 붙잡아보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김환영
논설위원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친숙한 것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참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인 것 같다.

 몇 년 전 그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가 사실이 아니란다. 아예 우랄·알타이어족 가설이란 게 폐기됐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외톨이 언어이거나 일본어와 더불어 ‘한·일 어족’에 속한다는 것이다. 만주어·몽골어·핀란드어·헝가리어·터키어 등 그 많던 우리말의 형제자매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아주 최근에는 역시 학교에서 배운 ‘의식의 흐름’이라는 게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과학자들이 ‘없다’고 밝혀냈다는 것이다. 의식은 흐름이라기보다는 맥박·펄스 같은 것이란다. ‘의식의 흐름’은 원시불교의 식류(識流·vinnanasota)에 해당한다. 그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의식이 흐름이라는 게 환상이나 착각이라는 주장은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의식이 흐름이 아니더라도 문학의 ‘의식의 흐름 글쓰기(stream of conscious writing)’ 기법은 유효하다.

 ‘의식의 흐름 글쓰기’는 일상생활에서도 효과가 널리 입증된 용도가 많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을 때,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많을 때 도움이 된다. 특히 불면증에 효험이 있다. 잠이 안 오면 종이 한 장을 꺼내 생각나는 대로 막 써 내려가면 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꿀 같은 잠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글쓰기에 대한 책이나 강좌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 기법은 마땅한 글감이 생각나지 않는 작가들이 애용하는 최후의 수단이기도 하다.

 창의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입맛이 없어도 먹다 보면 식욕이 돋듯이, 뭔가 아무거나 적다 보면 새로운 착상이 떠오른다. 거의 신비 체험에 가까운 몰입(flow)을 스스로 유도해내는 수단이다.

 주말에 자녀들과 함께 해볼 수 있는 게임·내기거리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된다. 주제는 정해도 좋고 안 정해도 좋다. 각자 종이와 필기구를 준비한다. 시간 제한을 둔 다음 각자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마구 써 내려간다. 철자법이나 띄어쓰기는 깡그리 무시한다. 단락에는 주제문(topic sentence)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도 필요 없다. 아예 단락을 생략하고 통으로 써도 된다.

 어른과 아이 사이의 수준 차이가 있는 만큼 어른에게는 핸디캡을 준다. 예컨대 어른의 A4용지 한 장을 어린이의 3분의 1로 치는 것이다. 더 많이 쓴 쪽이 게임의 승자다. 진짜 재미는 승부가 결판난 다음에 온다. 비록 마음 내키는 대로 적은 결과물이지만 가공하면 하나의 주제가 있는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나무를 절단해 가구를 만들듯, 선택과 집중과 첨삭을 통해 투박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의 산물이 세련된 글이 될 수 있다. 그런 시범을 보이는 게 자녀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신기한 선물이 아닐까.

 우리가 공기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뇌 속의 의식 작용도 의식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을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의식을 의식하지 않는다. ‘의식을 의식하는’ 것을 ‘의식화’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의식화’된 상태의 반대는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텅 빈 것과 같은 백일몽(白日夢)이다. 인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깨어 있을 때 하루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을 백일몽 상태로 보낸다고 한다. 백일몽이 오히려 정상적이며 나름대로 순기능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의식의 본체가 흐름이건 맥박이건, 백일몽이건 의식을 붙잡지 못한다면 의식이라는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의식을 붙잡는 것은 의식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의식을 글로 붙잡는 게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의식을 글로 붙잡는 것은 세월을 붙드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세월을 붙들고 있다 보면 사실은 우랄·알타이어족이 실재한다는 기쁜 소식도 들리지 않을까.

김환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