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공동위 정말 불필요한 기구” … 18시간 회담 깬 북한 엉뚱한 화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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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의 박철수 부총국장은 2004년 개성공단이 시범 운영됐을 때부터 남북회담에 깊숙이 관여해온 협상 베테랑이다.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북측 대표이기도 한 그는 17일 오전 1시쯤 회담을 마치고 퇴장하면서 남측 취재진에게 “안 한 것보다 못했다. 앞으로 이런 회담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18시간 전 회담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남북 관계의 ‘단비’로 만들자”고 다짐하던 남북이었다. 그런데도 박 부총국장은 “공동위가 정말 불필요한 기구란 것을 오늘 신중하게 느꼈다”고 했다.

 남북공동위는 2013년 4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공단 정상화를 위해 남북이 합의해 구성한 기구다. 이날 북한 근로자의 최저임금 인상(북측은 5.18% 인상 요구) 문제를 놓고 18시간이나 회담을 했으나 결국 빈손으로 헤어졌다.

 그래서 13개월 만에 열린 남북공동위가 다시 장기 표류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통일부 전망은 달랐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17일 브리핑에서 “개성공단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공동위가 필요하다”며 “박철수 대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화풀이로 그런 얘기를 할 순 있겠지만 그것이 북측의 기본적 입장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회담 날짜는 못 잡았지만 공동위 사무처를 통해 충분히 논의할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다음 회담이) 개최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과의 회담에 수차례 관여했던 당국자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한 당국자는 “박철수 부총국장의 몽니는 남측을 향한 것이라기보단 북한 내부용 메시지”라며 “내부에 대고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남측이 안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남북회담은 속성상 첫술에 배부르기 힘든 법”이라며 “그동안의 다른 회담보다 본부 훈령을 기다리는 시간은 줄고 실질적 논의 시간은 길었던 만큼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동위원장인 이상민 통일부 남북협력지구 발전기획단장은 북한 근로자의 최저임금 5.18% 인상안과 관련,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하는 등 과거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다만 개성공단 ‘3통(통신·통행·통관)’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회담이 결렬됐다고 한다. 통일부는 RFID(전자출입체계)를 통한 개성공단 출입·통관 절차 간소화 및 인터넷·휴대전화 사용 등을 요구해왔다. 익명을 원한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임금문제 이외에는 의제로 다루고 싶지 않아 했다”며 “박 부총국장이 ‘이런 회담은 필요 없다’고 한 것은 임금 외 문제까지 다루는 회담은 원치 않는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당장은 어렵겠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3통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의사를 교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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