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만성 골반통 원인은 스트레스 … 환자 아픔 달래는 게 치료 첫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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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병원 산부인과 허주엽 교수

‘이유 없는 통증’만큼 괴로운 것이 있을까. 만성 골반통이 그랬다. 병명도 모른 채 고통을 참다가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희대병원 산부인과 허주엽(사진) 교수는 이런 환자에게 한 줄기 빛으로 통한다. 병과 마음을 함께 다루는 그의 ‘공감 의술’은 만성 골반통을 극복 가능한 병으로 탈바꿈시켰다. 공감의 힘은 3000여 명의 환자로 꾸려진 ‘나비회(나를 이기고 건강을 향해 비상하는 만성 골반통 환우회)’의 초석이 됐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나비회 정기모임은 일반인과 만성 골반통 환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축제의 장이다.

만성 골반통은 월경통과 무관하게 6개월 이상 골반·아랫배·엉덩이·허리 주변에 극심한 통증이 지속되는 병이다. 허 교수는 “부인과 질환자의 20% 정도가 겪을 만큼 흔한 병으로 자궁내막증·자궁선근증 등 부인과 질환은 물론 대장염·방광염 등 다양한 질환이 복합적으로 연관돼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모든 환자가 공통으로 호소하는 스트레스가 만성 골반통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허 교수는 강조했다.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할 자궁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경련을 일으키거나 크게 수축한다. 이때 자궁 속 월경혈과 자궁내막 조직이 근육을 침투하거나, 나팔관을 타고 복부 쪽으로 역류한다.

이들은 체내 조직이기 때문에 건강할 때는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에선 ‘아군’은 ‘적’으로 둔갑한다. 면역세포가 몸을 회복하려고 이들을 공격하면서 염증과 통증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만성 골반통에 노출돼 있다”며 “과거에는 40~50대 환자가 많았지만, 요즘엔 서양과 마찬가지로 20~30대 환자가 늘고 있다. 젊은 환자의 경우 통증이 심각하면 자궁이나 나팔관을 드러내는 수술로 불임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만성 골반통은 병변이 초음파로 감별할 수 있는 1㎜보다 작은 경우가 많다. 또 통증의 범위가 넓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허 교수가 환자와의 관계 형성에 중점을 두는 이유다. 허 교수는 “환자의 증상과 아픔에 대해 이해할수록 만성 골반통의 치료법은 보다 정교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만성 골반통 환우회 ‘나비회’ 홈페이지(http://cafe.naver.com/worldcpp)에 접속해 환자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러운 답변을 단다. 허 교수는 “환자의 심리 상태까지 파악해야 치료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환자의 마음을 열게 하고, 그에 맞는 치료법을 안내하고 가르쳐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만성 골반통에 대한 정확한 감별진단과 원인 규명을 위해 2005년 만성골반통연구회, 2010년 대한만성골반통학회를 창립했다. 허 교수는 “이 질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심리적 지지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 joongang.co.kr

만성 골반통 환우회 나비회는 18일 오전 10시 경희의료원 정보행정동 지하 1층 제1 세미나실에서 제10회 만성골반통 건강강좌 및 환우회 정기모임을 연다. 허주엽 교수와의 대담, 경희대병원 교수진의 면역학·정신건강 강좌, 웃음치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문의 경희의료원 산부인과(02-958-8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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