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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면세점에서 무슨 창조경제를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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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호 02면

15년 만에 이뤄진 서울 시내의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이 마무리됐다. 면허권을 따낸 기업은 환호하고, 탈락한 곳은 실망하고 있다. 10조원 규모로 커진 국내 면세점 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사업인 만큼 재계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됐다. 정부도 “3000억원의 신규 투자와 4000여 명의 고용 창출이 기대되며,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 조기 달성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은 전망을 내놓았다. 사업자 선정을 계기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직격탄을 맞아 주춤해진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을 다시 한국으로 불러들이고,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려나갈 수만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다.

 그러나 선정 방식과 과정을 지켜보면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국내 면세점 시장은 2001년 1조7800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지난해 8조300억원으로 팽창했다. 연평균 20% 가까운 성장세 속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려 왔다. 이를 아무나 못하게 정부가 틀어쥔 채 면허를 배정하다 보니 무슨 특혜라도 되듯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소수 대기업들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도심 골목마다 편의점이나 약국 등의 미니 면세점이 2만 개 가까이 운영되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된다.

 면허 제도는 장기적으론 우리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안 된다. 근본적으로 경쟁 제한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금력 풍부한 대기업들에 유리한 구조로 돼 있다. 면허 따내기에 올인 하는 대기업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기업가 정신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둘러쳐준 보호막 속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장사를 하고 싶다는 것 아닌가.

 이게 과연 박근혜 정부가 경제정책의 전면에 내세워 온 창조경제인가. 유통 사업자 선정 하나를 놓고 온 재계가 들썩거리는 것은 창업과 혁신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슬로건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젠 면세점 사업자 선정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할 때가 됐다.

 지금 우리의 재계 현실은 어떤가. 창업 기업은 갈수록 줄고, 문 닫는 기업은 늘면서 산업마저 ‘저출산 구조’로 바뀌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활동 기업과 신생 기업의 비율로 보는 기업 신생률은 2007년 17.9%에서 2013년 13.9%로 내리막길이다.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파산 선고를 받은 기업은 1년 전보다 9.8% 늘었다. 대기업의 투자도 주춤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 결과 지난해 30대 그룹의 투자 실적은 2013년 수준인 117조1000억원에 머물렀고, 시설 투자는 1년 전보다 오히려 1.1% 감소했다. 대기업 채용 역시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30대 그룹의 채용 규모는 지난해 10% 감소에 이어 올해에도 6.3% 감소가 예상된다. 2년 연속이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과 혁신,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을 돌파구로 삼아야 할 정부가 자칫 기업들을 면허장사 중심의 안이한 체질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창조경제에 진짜 필요한 것은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지, 면허장 따내기 경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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