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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 터치] 첫걸음 뗀 영화사학회 '바른 說' 많이 밝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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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최근 한국영화사학회(회장 김수남)가 창립됐다. 30여명의 전문가가 모여 한국영화의 자료 발굴 및 정리, 연구, 국제 교류 등을 해나가기로 했다. 우리 영화의 발자취를 객관적 시선에서 바라보자는 취지다. 반가운 일이다. 최근 충무로는 급격하게 성장했지만 이에 대한 학문적 평가는 미진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학회 창립을 기념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세미나는 일종의 자아비판처럼 비쳤다. 특히 조희문(상명대)교수가 발표한 '최근 한국영화사 연구 경향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충격적이었다.

조교수는 현재 시중에 나온 영화사 관련서의 숱한 오류를 지적했다. 자료가 부정확한 것은 물론 표절에 가까운 자료 도용마저 있다는 것. 학문의 기본인 성실성과 진지함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그가 대표로 든 책은 지난해 출간된 '우리영화 100년'이다. 책에선 우리나라에 처음 영화가 소개된 것은 1897년이며 소개자는 에스터 하우스라고 나와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것. 저자인 김종원씨는 런던 타임스 1897년 10월 19일자에 실린 기사를 제시했으나 조교수는 당시 런던 타임스란 신문은 있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신문의 객원 기자로 소개된 에스터 하우스는 1900년대 초반 서울에 세워진 서양식 숙박시설이었다며 관련 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저자에게 책에 인용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저자의 공식 대응이 기다려진다.

한국영화의 선각자인 나운규에 대한 책도 도마에 올랐다. 1999년 북한에서 발간된 '라운규와 수난기 영화'에 소개된 자료들은 상당 부분 그가 97년 펴낸 '나운규'에 실린 내용이라는 것. 또 2002년 남한의 한국문화사는 북한책 '라운규와 수난기 영화'를 영인해 발행했고, 국학자료원에서 나온 '춘사 나운규 전작집'도 일부분을 제외하고 북한책을 그대로 옮겼다고 밝혔다.

사실 한국영화사 연구는 무척 고단한 분야다. 일례로 해방 이전에 제작된 영화는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신문.잡지의 기사, 당시 영화인의 감회.전문(傳聞) 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충무로의 사각지대인 것이다.

그만큼 자료의 정확성과 선행 연구에 대한 검증이 필수적이다. 영화사학회 창립도 때늦은 느낌이다. 그러나 기대는 크다. 학회가 출범한 만큼 설(說)과 설이 맞서며 '썰'이 아닌 정설이 많이 나왔으면….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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