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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약동이와 영팔이·만리종·허진형제 복수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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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18년간 운영하던 만화가게를 정리하면서 아버지가 단 한 질 남겨두신 게 '약동이와 영팔이'였을 정도입니다. 초가지붕에서 수채구멍까지 우리네 살던 모습이 생생한 토종만화예요. 줄거리는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합니다. 전작'탐정 약동이'가 전주곡이었다면 '약동이와 영팔이'는 절정에 해당하는 작품이죠."

만화가게집 아들이었던 만화가 박재동(50)씨의 회고에는 찬사가 흘러넘친다. 그 '약동이와 영팔이'(62년작)가 40여년만에 돌아왔다. 박기당의 '만리종'(58년작), 신동우의 '허진형제 복수록'(59년작)과 함께다. 한국애니메이션센터가 제작비를 전액 지원, 새만화책.바다출판사와 공동으로 세 권의 복간본을 펴냈다.

약동이를 창조한 방영진(1939~1999)은 활동기간이 짧아 후배 만화가들에게도 한동안 잊혀졌던 인물. 대표작'약동이와 영팔이'를 한창 그리던 20대 중반에 류머티즘이 악화돼 이후 방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했던 탓이다.

자연히 작품활동도 잦아들었고,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늘 먼저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낙천가였다고 지인들은 기억한다. 동갑내기 친구인 만화가 노석규('뽀야네 집''얄숙이 만화일기')씨는 "양정고 재학시절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었고, 기타도 수준급이어서 동요을 만들어 방송사 공모에 당선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약동이와 영팔이'역시 명랑한 소년들이다. 시골중학생 약동이는 남에게 굽히기 싫어하는 성격의 영팔이와 좌충우돌 끝에 우정을 쌓아간다. 토끼를 길러 팔아 쉬 닳지 않는 군화를 사려는 에피소드나 서울로 수학여행갈 비용을 마련하려 꾀를 짜내는 모습은 '그 때 그 시절'을 고스란히 독자의 눈앞에 불러낸다.

본래는 약동이와 영팔이의 서울 고학생활이 총 40권 분량으로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첫 세 권만 한 책으로 묶였다.나머지는 책을 찾는 독자들이 어느 정도 형성돼야 복간이 가능할 전망이다.

'만리종'의 작가 박기당(1922~1979)은 김종래(1927~2001)와 함께 60년대 만화계를 이끈 주인공. 전설을 소재로 한 '묘구 공길이', SF물인 '유성인 가우스'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1백여편을 남겼다.'만리종'은 고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전장에서 숨진 병사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아기를 생매장해야 한다는 헛된 점괘 때문에 원수가 된 두 무인 집안의 갈등을 그렸다. 만화가 그려진 칸 바깥에 소설처럼 줄거리가 흐르는 이른바 '그림소설체'작품으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대를 풍미하던 만화형식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에까지 두루 친숙한 신동우(1936~1997)의 작품 역시 복간되기는 '허진형제 복수록'이 처음이다. 원수에게 3대에 걸쳐 복수하는 줄거리로 고비마다 잦은 반전과 비극적 결말이 독특하다. 비교적 초기작품으로 후일 대표작 '홍길동'의 토대가 됐음직한 그림체를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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