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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스타트업 진검 전쟁판, 목검으로 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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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이제는 조금 잠잠해지는 느낌이지만 지난 몇 주간 대한민국을 휩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공포는 상당했다. 유독 21세기 시작 이후부터 조류독감·구제역·사스 (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등 각종 전염병이 유행했지만 메르스처럼 직접적으로 온 국민과 국가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원인과 대응과정 상의 수많은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이 지적해왔지만 꼭 기억해야 할 교훈 가운데 하나는 위기관리의 필요성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나 재난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사전에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었고 했어야만 했는지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

 위기관리 능력은 정부나 대기업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작은 규모로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성장해 가야 스타트업에게도 위기관리는 무척 중요한 과제다.

 스타트업이 출발부터 성장의 전 과정에 걸쳐 맞닥트리고 해결해 나가야 할 리스크의 종류를 다 적어 본다면 아마 수 백 가지가 넘을지도 모른다. 그 동안 스타트업의 성장과 부침을 함께 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사업 시작에서부터 성장까지 전 과정에 걸쳐 본질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리스크는 거의 대부분 ‘사람’과 연관돼 있다. 함께 창업한 동지들과의 갈등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암초라고 봐야 한다. 또 성장의 과정에서 합류하는 인재들이 늘어 나기 시작하면 조직을 장악하지 못한 채 허둥대는 창업가들도 자주 보인다. 사업규모가 커지면서 필요한 기능을 중심으로 사람을 채용하다 보면 창업 초기에 가졌던 마음과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의 리스크는 스타트업을 휘청거리게 만들 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

 아울러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복병은 자본과 경험을 지니고 등장하는 경쟁자들이다.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이 대목에서 다른 경쟁자들이 자신들의 사업을 베꼈다고 한탄도 하고, 고객을 뺏어 간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하며, 자신들은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자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의 창업가들은 한탄도, 울분도, 자위도 그저 속으로 삼키며 절대경쟁우위에 서기 위하여 끊임없이 정진한 사람들이다.

 가끔씩 남들은 날이 매섭기 짝이 없는 진검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데 목검을 들고 나타나서 휘두르는 창업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정교하게 가다듬지 않은 전략으로 전력을 낭비하는 것이다. 국내 시장이 협소하다는 문제의식만 지닌 채 제대로 된 역량도 갖추지 않고 해외시장을 개척하겠다며 출장비만 낭비하고 다니는 창업가들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한계비용이 점점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목표 시장을 국내로 제한하지 않고 해외로 진출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해외시장 개척은 과거 전통산업이 그랬던 것과 같이 현지에 법인을 세우고, 인력 채용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전략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해외지사 하나도 두지 않고 전 세계적 규모로 고객을 모으고 서비스를 해 나가는 스타트업들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 이제는 달라진 세상의 법칙으로 도전을 해나가야 한다. 스타트업의 가장 큰 리스크인 제한적인 물적 자원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성장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리스크는 위에서 언급한 다소 두루뭉수리한 것과는 달리 상당히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국 맞서 이겨 내는 기업들만이 축배를 들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리스크를 관리하는 비법은 없다. ‘리스크 관리’를 위한 조직을 상시적으로 가동할 수도 없는 게 스타트업의 현실이다. 매일 매일이 탐험인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부딪쳐 보고 넘어져 가면서 리스크 대응근(筋)을 단련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 국가경제의 새로운 동력인 스타트업들이 좀 더 지혜롭게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살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해 나가길 바란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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