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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시대 미 대선 ‘셀카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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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소셜미디어(SNS)의 시대, 미국 대선 주자들이 ‘셀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4일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석, 지지자와 셀카를 찍고 있다(왼쪽 사진). 민주당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지난달 14일 아이오와에서 연설한 후 유권자와 셀카를 찍었다. [AP=뉴시스]

‘왕관을 쓰려는 자, 셀카를 견뎌라.’

 미국 대선 주자들에게 떨어진 특명이다. 소셜미디어(SNS) 시대에 셀카는 후보들이 감당해야 할 또 다른 짐이다.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대선에서 자신의 아기에게 입맞춰 주거나 사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은 사라졌다. 대신 셀카를 원한다. 내년 선거를 ‘셀카 대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후보들은 대개 연설이 끝난 뒤 셀카에 한 시간을 할애한다. 지난달 뉴햄프셔에서 열린 연설에서 공화당 주자인 랜드 폴 상원의원은 두 시간을 셀카 찍느라 보냈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완벽한 셀카를 위해 셀카봉을 들고 다닌다.

 그러나 셀카 때문에 유권자와의 의미 있는 소통이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셀카에 시간을 허비하느라 정치적 입장을 밝힐 기회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정치 잡지 ‘아이오와 리퍼블리컨’의 편집장 크레이그 로빈슨은 “셀카 때문에 후보들이 망했다”며 “진짜 팬인지, 자신에게 투표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후보들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경외과 의사 출신이자 풀뿌리 보수 운동인 티파티의 지지를 받고 있는 벤 카슨은 “셀카를 그만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예 지난달 한 연설에 앞서 “미리 말씀 드리지만 오늘은 어느 누구와도 셀카를 찍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셀카 때문에 경호팀의 입장도 곤란하다. 셀카를 찍으려고 지나치게 근접하는 유권자를 막자니 후보 이미지가 나빠지고 놔두자니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어서다. 후보들 스케줄 관리도 힘들어졌다. 공화당 후보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보좌관 릭 테일러는 “딱 백 걸음만 걸으면 된다며 와 달라고 하지만 (셀카 때문에) 실제로는 20분 넘게 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시대에 셀카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폴 의원의 수석 디지털 전략가 빈센트 해리스는 “셀카는 후보자의 인지도를 공짜로 높일 수 있는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셀카 잘 나오게 하느라 15파운드(약 6.8kg)를 뺐다”며 “(대선 후보와)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릴 수 있는 게 미국 민주주의의 아름다움 아니냐”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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