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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갈라먹기 부추기는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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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 나라의 경제력과 국민생활 수준은 그 나라 국민과 기업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일하고 많이 생산하는가에 달려 있다. 국민총생산을 국민소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기업과 국민이 게으르게 되느냐, 부지런히 일하게 되느냐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각종 정치.경제.사회적 제도와 국가관리체제에 달려 있다.

같은 전통문화와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면서 50여년간 다른 경제체제 아래에 있었다는 차이 만으로 생산성과 생활수준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 남북한과 동.서독이 그 증거다.

*** 우리경제 뿌리깊은 나쁜 버릇들

30년 전에 비해 지금 한국 사람들이 잘 살게 된 것도 결코 소득의 재분배나 부동산 가격의 상승 때문이 아니다. 1960, 70년대에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을 했던 것은 당시 경제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뛰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97년에 우리가 외환위기를 당한 것도 80년대 말 이후 한국의 경제제도와 국가관리체제가 정부와 금융기관은 물론 기업과 국민을 무책임하게 만들어 한국사회를 총체적 비효율과 기강해이 상태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이 낮고 무책임했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 정부의 경제정책과 제도를 포함한 총체적 국가관리 구조가 이런 풍토를 조장하고 방치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렵다. 한마디로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근로자나 모두 열심히 일하려는 분위기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제도와 국가관리체제 곳곳에 스며 있는 기강해이와 비효율을 부추기는 요소들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도입된 각종 개혁조치들은 바로 이것을 달성하고자 한 것이었다. 정리해고제 도입, 노사관계 제도의 개선, 부실 금융기관과 재벌기업의 퇴출, 공기업의 민영화와 공공부문 개혁 등이 바로 한국사회의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잡고 한국사람들을 예전처럼 다시 부지런히 뛰게 만들기 위한 방안들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 경제와 사회에 과거의 나쁜 버릇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 온갖 갈등과 고통을 딛고 이루어 놓은 각종 개혁조치들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린 현 정부의 개혁 아닌 개혁정책이 있다.

본디 개혁이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현 정부의 개혁이란 것이 사람들을 부지런하고 생산적으로 일하도록 바꾸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적게 일하고 남의 돈으로 편하게 사는 것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소득 재분배와 복지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형평과 국민통합의 이름으로 목소리 큰 이익집단의 기득권이나 보상해 주고 갈라먹기를 부추기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이것은 따뜻한 시장경제도 아니고, 진보 노선도 아니다. 그저 만인의 만인에 대한 뜯어먹기 경쟁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와 기강해이를 방관한다면 한국 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은 저하되고 결국 우리 모두가 가난하게 될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지금 보다시피 힘없는 서민층과 근로계층이 가장 먼저 고통을 받게 된다.

*** 우리경제 뿌리깊은 나쁜 버릇들

국가경제를 관리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과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의지와 따뜻한 마음만으로 국가경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게으름과 무책임을 부추기는 정부는 국민을 곤궁하게 만들 것이고, 국민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도록 만드는 정부는 부강하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절대빈곤이 있고, 대다수 국민의 생활수준은 선진국에 못 미치고 있다. 더 먹기를 원한다면 더 생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뜯어먹기와 갈라먹기 풍조가 만연하면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살 길은 아직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金鍾奭(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