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꿈과 외로움을 찾아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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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학생들과 면담을 하거나 대화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학생 대부분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런 질문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돌이켜 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참 망설이던 학생들은 기껏 원하는 직종이나 한두 개 들먹이고 만다. 하지만 좋은 직장이나 돈.명예.권력 등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수단만을 추구하며 성공해서 돈 벌고 출세할 궁리만을 하며 살아가게 마련인데, 그러다 보면 결국 왜 그러한 성공을 원했는지조차 잊게 된다. 하기야 꿈도 잊고 희망도 버려야만 돈도 벌고 출세도 할 수 있는 세상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꿈꾸는 삶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이다. 어느 수필가의 글에 나오는 것처럼 하루 종일 책을 읽다가 숲과 들과 산, 그리고 자갈 깔린 기다란 해안을 거닐고 싶다. 좋은 음악이 나오는 찻집에 앉아서 오래오래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평화롭게 살고 싶은 것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살고 싶다. 환했던 대낮이 어두운 밤으로 바뀌는 매일 반복되는 기적 같은 순간, 온 세상이 파르스름한 빛으로 가득 차는 엄청난 변화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달 밝은 밤이면 바흐와 핑크플로이드를 끝도 없이 들으며 맑고 밝은 눈빛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눈 내리는 밤이면 좋은 벗들과 밤새 붉은 포도주 잔을 기울이다가 새벽에 세상이 다시 푸르스름하게 깨어나는 것도 느끼고 싶다.

그때, 숨 한번 들이마실 때마다 진한 그리움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마일스 데이비스 음악이라도 있다면 분명 행복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을 조용히 돌이켜 볼 수 있는 끊임없는 열정, 그리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근본적인 외로움이다. 자꾸 밖으로만 향하는 마음의 시선을 내 안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텅빈 외로움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낯선 곳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일상에서 툭 튕겨져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되도록 관광지는 피해야 한다. 구체적 일정은 없는 편이 낫다.

그저 차를 타고 한없이 가다 내리고 싶은 데 내리고 머물고 싶은 데 머무르는 그런 식의 여행이어야 한다. 구체적인 일정과 목적이 있는 여행은 출장이지,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이름없는 작은 도시들을 한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지리산에 올라 끝없이 펼쳐지는 산봉우리를 발 아래 굽어보며 걷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풀벌레 소리 들려오는 저녁 무렵, 섬진강변을 천천히 거닐어 보는 것도 근사하리라.

일상에 갇혀 대도시를 벗어날 수조차 없다면 남산길이나 덕수궁 돌담길이라도 걸어 보자. 그리고 "아, 난 지금 이곳에 처음 온 낯선 여행객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려 볼 일이다.

나의 일상을 낯선 여행객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최선의 여행법이다. 자신의 외로움을 찾아 나선 여행에서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던 꿈을 문득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김주환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