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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향해 변신하는 청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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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호 29면

1 유의정, 청자 상감운학미키문 매병, 29X29X48㎝, 2011 2 유의정, 청자 상감운학 스타벅스문 대접, 16X16X5.5㎝, 2011

‘오래된 미래’라는 말은 모순되면서도 현대 산업문명을 반성하게 만드는 울림을 지녔다. 한국 사회에서 이 어구가 퍼지기 시작한 계기는 『오래된 미래』(1996)라는 책 덕분이었다. 스웨덴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티베트 고원에 살면서 얻은 깨달음을 “진정한 미래는 오랜 옛 지혜 속에 있다”는 이 한 마디로 응축시켰다.

‘전통 문화의 현대화’를 얘기할 때도 ‘오래된 미래’는 나침반 구실을 한다. 영원불변한 예술의 힘은 우리 마음 속에 있으며, 그 마음이 움직여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수천 년 정제된 한국미의 전통을 어떻게 오늘 우리 가슴에 꽃피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예술가에게는 화두와도 같은 전언이다.

도예가 유의정(34)은 오래된 미래를 고려청자에서 찾았다. 고궁 담벼락을 이웃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어린 시절에 궁을 놀이터 삼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무렵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그 궁 안에 있었기에 박물관 유리 진열장 안에 모셔져 있던 오래된 물건들은 그를 자연스럽게 옛날 생각으로 이끌었다.

“오랜 시간을 썩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 온 것들 중에는 도자기가 특히 많았다. 그것들은 시간에 맞설 수 있는 태생적인 강인함과 보전성 덕분에 수백 수천 년이 지난 후인 지금의 나에게도 그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 전해주고 있었다. … 도자기는 색과 형태, 문양 등을 통해 당대의 사상과 유행 등 인간의 정신적 물질적 욕구를 반영하며 발전해 왔다. 나에게 도자기는 의식의 흐름을 담는 중요한 대상이 되며 정신을 물질화하여 보전시키는 매개체다.”

유의정은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자신의 오래된 미래로 삼았다. 물레성형과 상감기법 등 전통 청자 제작 방식을 충실히 따랐다. 여기까지라면 진부하다. 예술이 멋의 경지에 오르는 한 가지 잣대는 파격이다. 구름 속을 나는 학(鶴)은 날아가 버리고 미키 마우스가 들어앉았다. 두 겹 흑백 상감된 원 안에서 20세기 디자인의 아이콘이라 할 미키 얼굴이 웃고 있다. 1928년 월트 디즈니가 창조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수컷 쥐가 장생의 상징 두루미 자리를 꿰찼다. 이름하여 ‘청자 상감운학미키문 매병’이다.

‘청자 상감운학스타벅스문 대접’도 있다. 커피 전문점의 대명사로 통하는 다국적 커피회사 스타벅스의 로고 ‘세이렌’을 바닥에 새겼다. 그러고는 구연부(口緣部), 즉 아가리 한 쪽을 슬쩍 깼다. 짐짓 해묵은 세월의 흔적을 입힌 그 능청스러움이 재미있다. 작가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한국사회 문화현상이 반영된 도자의 모습을 연구하고 싶었다”고 작품의 변을 적었다.

오는 21일부터 8월 2일까지 서울 시청광장 앞 서울도서관에서 열리는 ‘바람난 미술’전에 선보인다. 가격은 각 300만 원.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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