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 특파원 혼돈의 그리스 가다] IMF, 치프라스 실정 비판하며 “부채 덜어줘야 회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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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대한 수용 찬반을 묻는 그리스 국민투표가 5일 실시된다. 2일(현지시간) 찬성에 지지하는 노인(왼쪽)이 반대를 주장하는 젊은 남녀와 논쟁하고 있다. [테살로니키 AP=뉴시스]

“그리스 부채를 경감해줘야 한다.”

 그리스 국민투표를 사흘 앞둔 2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보고서다. 그리스의 금융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려면 10월부터 2018년 말까지 3년간 519억 유로(약 64조7400억원)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중 360억 유로는 유럽연합(EU) 채권단이, 나머지는 IMF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봤다. 그리스가 심도 있는 개혁에 돌입하면 채권단이 만기 연장(20~40년) 등 채무 재조정을 통해 부채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도 했다. IMF는 보고서에서 치프라스와 시리자 정부라고 지칭하지 않았을 뿐 “지난해 말 이후 정부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나빠졌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IMF 보고서에 대해 “치프라스 정권의 정책 실패를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좌파 정권만 아니면 채무 탕감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EU는 대놓고 반(反) 치프라스 운동을 벌였다.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의 예룬 데이셀블룸 의장은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채권단 제안이 부결될 경우 그리스의 재정 상황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벗어나는 것은 “재앙”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내부도 선거로 달아올랐다.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은 연일 사람들로 들끓었다. 그간의 찬반 집회에 이어 2일엔 채권단의 제안(찬성)에도, 현 정부의 입장(반대)에도 모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산당 집회까지 열렸다. 법적으로 집회를 열 수 있는 마지막 날인 3일엔 치프라스 총리가 광장을 찾았다. 도로 곳곳에도 ‘OXI(오히·반대)’와 ‘NAI(네·찬성)’ 포스터가 붙었다.

 하지만 국민투표가 막판 중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리스 최고행정법원(Council of State)은 3일 밤늦게 국민투표의 적법성 여부를 결정한다. 앞서 유럽 민주주의·인권 감시기구인 유럽평의회는 이미 이번 투표가 최소 기준에 충족되지 못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러는 사이 그리스 경제는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져들었다. 정부의 자본통제에도 은행의 현금은 말라가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일(현지시간) 현금인출기(ATM)를 통해 출금할 수 있는 일일 한도가 60유로에서 50유로로 줄었다고 보도했다. 20유로 지폐가 모두 동났기 때문이다.

 콘스탄틴 미칼로스 그리스 상공회의소 의장은 “은행의 현금 보유액이 5억 유로까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7일 은행 영업이 재개되더라도 몇 시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나오더라도 은행이 정상화되는 시점은 일러도 20일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구제금융 안에 대한 EU 회원국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그리스에 자금이 투입될 수 있어서다.

 충격은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수출입이 거의 중단되면서 기업의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고 식당이 문을 닫거나 식료품 사재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는 식품과 원자재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아테네=고정애 특파원, 서울=하현옥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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