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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부시 평양에 보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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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 핵 문제의 해결 방향을 놓고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이 5일 미국 기업연구소(AEI) 북한 문제 세미나에 대거 참석, 강온파로 나뉘어 팽팽한 설전을 벌였다.

◆아버지 부시라도 평양에 보내야=셀릭 해리슨 국제정책센터(CIP) 연구원은 "1993년 북한 핵 위기 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돌파구를 열었던 것처럼 이제는 부시 전 대통령 수준의 고위급 저명 인사가 방북해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한이 지난해 10월 농축 우라늄건을 시인했을 때, 이를 협박으로 간주하지 않고 진지한 협상을 시작했더라면 지금처럼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협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연료봉 봉인을 제거하고 플루토늄 재처리에 나서는 등 오히려 상황이 더 꼬였다는 것이다.

레온 시걸 사회과학연구위원회(SSRC) 동아시아 안보문제 선임연구원은 "이라크전의 승리가 북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기보다 오히려 '봐라, 이라크는 핵무기가 없어서 당했다'는 식의 인식만 키워줬고, 따라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계속 거부하면 핵무기를 선호하는 북한 내 군부 강경파의 입지만 키워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도 "북한은 이제 '위협을 계속하면 미국이 결국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오판을 접어야 하고, 미국도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굴복이라고 봐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을 외면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키웠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 정상들과의 대화.협상에 적극 나서 결국 승리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오버도퍼 교수는 "지금 협상과 외교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미국이 어떤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면 그 나라와 접촉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북(對北) 제재.봉쇄책 주저 말아야=그동안 북.미 간 양자 협상론에 회의적 견해를 보여온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한다고 해서 이것이 대화.협상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경제 제재나 고립정책도 외교적인 방법"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는 "북한이 경제 제재는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약점을 감추려는 위협에 불과하며, 압력이 동반돼야 실질적 협상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닉 에버스타트 AEI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남북 비핵지대화 선언, 제네바 합의, 페리 프로세스, 햇볕정책과 남북 정상회담 등 수많은 약속을 저버린 것은 물론 우리를 속여왔고, 이제는 위조화폐를 찍고 마약까지 팔고 있다"며 협상으로는 북한 핵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유엔의 이라크 핵무기 사찰팀장을 맡았던 데이비드 케이 포토맥연구소 연구원은 한발 더 나갔다.

그는 "현재 미국의 군사력에다 유엔의 동의가 더해진다면 해상.공중.육상에서 북한을 완전 고립시킬 수 있으며, 유사시 미국은 북한의 재래식 화력이 2차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북한을 초토화할 수 있다"며 강압.고립정책을 외교정책과 함께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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