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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소비자는 표절 패션을 어떻게 볼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33호 29면

출판계가 표절로 뜨겁다. 소설가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우국』 일부를 베꼈다는 논란이다. 한번 의혹이 제기되자 다음은 일파만파다. 대중들의 관심과 공분이 대단하다. 혹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표절의 기준을 조목조목 읊는가 하면, 누군가는 재빠르게 표절 논란에 중심이 되는 대목을 패러디한다. ‘작가의 절필만이 해법’이라는 돌직구성 주장도 나온다.

스타일#: 문학 표절과 디자인 표절

그 비웃음과 비난이 얼마나 거센지 결국 출판사와 작가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처음엔 “사실무근이며 표절 제기는 부당하다”는 요지를 밝혔던 출판사가 사과 성명을 내며 꼬리를 내렸고, 21일엔 신씨가 사과로 여겨지는 해명을 하며 단편 ‘전설’이 수록된 작품집의 회수를 결정했다.

기실 이번 표절 논란은 처음이 아니라 15년 전에도 이미 있었다. 그때는 유야무야 지나갔던 일이 지금 이슈가 되는 이유가 뭘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인터넷과 SNS의 힘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는 것. 그리고 사실을 알게 된 이상 한국 대표 소설가의 표절은 대중이 침묵할 수 없는 ‘사건’이 됐다는 점이다. 이는 신씨의 책을 읽었든 안 읽었든, 한국 문학을 사랑하든 안 사랑하든 상관없어 보인다. 문학이라는 이 고귀한 예술에서 베끼기란 있을 수 없다는 전제가 확고한 까닭이다. 절대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이를 어긴 자에 대한 냉혹한 벌이다.

이를 지켜보며 패션의 표절 논란이 중첩되지 않을 수 없다. 출판계에서는 문학의 표절이 ‘공공연하다’고 했지만 패션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때 국내 디자이너들의 해외 출장이 신제품 디자인을 베끼기 위한 샘플 구매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당연히, 다들 그렇게 하니까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지난해만도 LF패션(옛 LG 패션)이 한 해외 아웃도어 업체와 디자인 도용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고, 캐나다구스를 따라한 국내 패딩 상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코리아 구스(사진)’라는 별칭도 생겨났다. 이런 건 그나마 뉴스에 나는 사례들이다. 쇼핑몰 몇 개만 들어가 봐도 ‘이자벨마랑 st(스타일)’, ‘아쉬 st’처럼 고가의 인기 브랜드를 그대로 복제한 제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오히려 한국인 체형이나 취향에 맞게 업그레이드시켰다는 자랑을 곁들이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런 디자인 베끼기가 너무나 빈번하고 자주 접하기에 이제 소비자의 감각도 무뎌진다는 점이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산다. 얼마나 똑같으냐가 중요하지, 똑같은 자체를 문제시하는 이는 적다. 소송을 당했든 벌이든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패션은 원래 그런 거니까, 라면서 말이다. 트렌드라는 게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며 판을 키우는 거 아니냐는 논리가 찝찝한 마음을 씻어준다.

허나 그러한 산업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패션의 독창성은 존재한다. 글이든 옷이든 창작의 고통이란 다르지 않고, 원본과 원작의 가치는 존중받아야 한다. 한 개의 단어가, 하나의 문장이 주는 힘이 있다면, 내 머릿속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한 벌의 옷이 주는 감동도 분명 있을 터다. 나를 실제 나보다 더 예쁘게 꾸며주는 마법의 디자인에 감탄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창작이라는 영역에서 ‘패션 표절도 표절이다’라는 명제를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싶다. 법적 제도와 상관없이 쉽게 베끼고 돈 버는 일이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 디자이너의 옷을 입어봤든 아니든, 패션을 사랑하든 아니든 상관 없다. 독자만큼 소비자도 힘이 세다.

글 이도은 기자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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