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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의식적인 표절 … 문인들의 침묵은 자살 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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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씨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소설가 이응준씨가 25일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표절 시비가 반복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문제 제기 글을 썼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지난주 초부터 한국문단은 요동쳤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신경숙(52)씨가 일본의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문단 안팎을 뒤흔들었다. 정작 표절 의혹을 제기한 소설가 이응준(45)씨는 말을 아꼈다. 16일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을 게재해 표절 의혹을 제기한 뒤 한 차례도 대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간간이 전화로 입장 표명을 했을 뿐이다. 특히 신씨가 23일 경향신문을 통해 표절에 대한 입장을 밝힌 이후에는 휴대폰까지 끈 채 두문불출했다.

그런 이씨가 마침내 중앙일보에 입을 열었다. 왜 표절 의혹을 제기했는지, 왜 하필 지금인지 등 세간의 궁금증에 대해 상세하게 답했다. 그는 “지금 당장 표절을 포함한 한국문학의 문제들을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기록으로 남겨 나중에라도 반드시 개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씨는 "중앙일보 인터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앞으로 일체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3일자에 보도된 신경숙씨 해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이제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내가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문제 삼은 신경숙씨의 표절 대목은 문학계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정당한 ‘문학적 사용’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기고에서 밝혔지만 가령 특정분야의 전문지식을 소설 속 지문(地文)이나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용해해 넣는 것은 가능하다. ‘소설화(小說化) 작업’이라고 부르는 거다. 한데 신씨의 ‘전설’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기고에서 신씨의 행위를 ‘다른 소설가의 소설의 육체’를 그대로 ‘제 소설’에 ‘오려붙인 다음 슬쩍 어설픈 무늬를 그려 넣어 위장’했다고 표현했다. 신씨의 행위는 지극히 ‘의식적인 표절’이다. 그런데 신씨의 해명은 ‘기억이 나지 않는 행위에 의한 표절’이라는 거다. 내가 그런 ‘난해하고 아리송한’ 표절인정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했던 내 주장과 상충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23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의 신씨의 표절인정을 제대로 된 표절인정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검찰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은 여전히 반대다. 문인들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문단이 깨끗해지기를 바란다.”

-트위터 등 인터넷에는 핵심인 표절 문제에 대해 아직도 개운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다. 사람들은 명백한 표절이라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명백한 표절인가.

“신씨에게 문학이 전부이듯 나에게도 문학은 내 전부다. 나도 내 전부를 걸고 말한 것이다. 당연히 표절이다.”

-‘우국’과 너무 흡사한 ‘전설’은 그렇다치고 신씨의 다른 작품들은 어떤가. 최근작 『어디선가 나를 찾는 벨이 울리고』 같은 작품에 대한 표절 의혹도 제기되는데 그런 정도의 유사함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내가 공식적으로 제기한 부분들만 책임을 지고자 한다. 나머지는 다른 문인들과 독자들의 추상같은 판단에 맡긴다. 내 짐이 너무 무겁다.”

-신씨는 2000년부터 표절 시비에 시달렸다. 최근작 『어디선가 나를 찾는 벨이 울리고』에 대한 표절 의혹이 제기되긴 했지만 적어도 2000년 이후 94년 작인 ‘전설’ 만큼의 ‘표절 글쓰기’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문제가 된 작품들을 작품집에 계속해서 남겨둔 것은 문제다. 그런 점에서 오만했다고도, 표절 문제에 둔감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신씨는 왜 표절 문제를 보다 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을까.

“너무 권력이 강하다보니 누군가 감히 같은 사안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끄집어내 공격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내 방식은 가장 고전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오직 글을 통해 오랜 숙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건 와중에 일체 방송인터뷰를 사양했다. 비만한 권력은 편한 것만 보고 편한 것만 듣고 편한 대로만 사고한다.”

-비만한 권력이라고 표현할 만큼 신경숙씨에게 권력이 있나.

“이번의 내 글을 처음에는 문예지에 실어보려고 고심하고 노력했지만 그 가능성이 제로라는 사실 앞에서 새삼 절망했었다. 이게 증거다. 만약 고지식하게 진행했더라면 틀림없이 우스꽝스러운 꼴을 당했을 것이다.”

-이른바 문학권력 얘기도 많이 나온다. 문학권력이 존재하나. 어떤 점이 문제인가.

“당연히 존재한다. 가령 정치는 미우니 고우니 해도 어쨌든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다 보니 문제가 있으면 빠르든 늦든 결국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한국 문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대중은 무관심하다. 마치 성채와도 같은 그곳에서 쥐도 새로 모르게 황당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문단이라는 왕국에는 임기 말이라는 것도 없어서 가령 사정당국이 불쑥 뛰어들어 누군가를 잡아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성주들은 심심치 않게 대중 앞에 나서서는 정교한 위선으로 포장한 묘한 감동을 판매한다. 바닥에 파묻힌 어두운 역사까지 엉뚱하게 조작하는 판이니 훗날 사건을 다시 파헤치기도 쉽지 않다. 이 왕국의 가장 무서운 점은 비판자의 늑대 유전자를 꼬리치는 애완견의 유전자로 바꿔버린다는 점이다.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에게라도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 문인들을 ‘문단공무원’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너무 문학적인, 비유적인 표현이다. 구체적인 문학권력의 폐해 사례를 소개한다면.

“표절로 시작한 마당이니 표절에 대한 사례로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등장했던 많은 표절 의혹 제기들을 모두 무마시키고 이 표절의 악순환을 체계화시킨 것이 바로 문단권력이다.”

-허핑턴포스트 글에서 출판사의 요구에 작가가 휘둘려 표절 사건이 터지기도 하고, 와중에 신인 작가가 적반하장으로 매장되기도 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지 밝힐 수 있나.

“문단의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내가 너무 지쳤다. 내 짐이 너무 무겁다.”

-신경숙씨 표절 논란을 처음 접한 시기는.

“1999년을 지나 2000년 가을 무렵. 충격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했다고 하더라도 의혹 제기를 위해 10년간 문단을 떠나고, 본격적인 준비를 위해 6개월간 하던 영화 일을 그만두는 건 다른 문제다. 그렇게 끈질기게 매달린 이유는.

“그런 질문을 내게 던지기 전에, ‘한국문단은 이대로 썩어가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쪽으로 변해야 할 것인가’라는 내 질문에 누구든 먼저 답해줘야 한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되찾는 것은 우리 문인들 모두의 의무다. 문인들은 평소 정치비판과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고유 영역이 이토록 썩어문드러져 가고 있는데도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고 자살 행위다. 내 주변에는 지난 10년 내내 내가 이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해보려 했는가를 생생히 증언해줄 사람들, 특히 문인들이 수두룩하다. 지금도 늦었다고 그러는 마당에 더 늦출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무모해 보이는 이 일을 이제는 벌여도 좋을 만큼 내 산문 문장이 준비됐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또 더 늙는다면 나도 패기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죽는 날 오늘 이 일을 안 한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결행하고 아프기로 결정했다. 그뿐이다.”

-대표적인 작가인 신씨는 어정쩡한 상태지만 사과했고 출판사 창비는 먹칠을 했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신씨 등에 크게 실망을 했다. 바라던 결과인가.

“어리석은 소리다. 자신의 슬픔을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상황이 바뀌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내 전부를 걸고 노력했다. 이제 내가 벌여 놓은 일들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나는 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문인으로서 한국문단을 위해 그나마 할 일을 한 것이고, 이 이상 뭔가를 더 하려고 한다면 추해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신씨는 당분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자숙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절필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결코 신씨의 절필을 바란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좋은 작품을 쓰기 바라듯 다른 모든 작가들도 좋은 작품을 쓰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문단과 신씨, 출판사 등이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은.

“문학에 대한 사랑과 사명감으로 이 일을 지혜롭게 마무리해주었으면 좋겠다. 소설가 신경숙의 반대편에 서 있는 분들도 오늘의 이 사태를 사적 복수의 기회나 분노의 하수구로 이용하는 일이 없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학술논문과 달리 문학작품의 경우 표절 판단 기준이 아직 모호하다. 생각하는 기준 같은 게 있나.

“표절의 가장 강력한 기준은 작가의 양심이다. 표절인지 아닌지는 그 글을 쓴 본인이 제일 먼저 알 것이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소설을 쓸 때 용인되는 자료 사용방식이 있다. 그 기법을 따르는 한 표절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거기다 각주나 미주, 참고목록 같은 것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표절에 관한 한 아무런 문제 없는 소설 텍스트를 얻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한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의혹을 제기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는데.

“인간 신경숙 개인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감정도 있을 수 없다. 다만 문학인으로서 느끼는 공적인 의무감이 허핑턴포스트에 기고를 하게 했을 뿐이다.”

-2000년에 정문순씨가 문제 제기했을 때는 묻혔었으나 이번 허핑턴포스트 기고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허핑턴포스트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을 법한데.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을 실을 만한 문예지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잡지들도 여의치가 않았다. 문단과 이 사회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게 ‘허핑턴포스트코리아’였다. 그 매체의 잠재력이 순기능으로 작용해 많은 독자들의 기적 같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만약 독자들의 폭풍 같은 힘이 없었다면 내 문제 제기는 과거 신씨의 표절을 지적했던 다른 글들처럼 무시당하고 묻혀 버렸을 거다. 만약 그렇게 됐더라고 해도, 나는 ‘기록’의 숭고함을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내 기고가 빛을 발휘해 문학의 섬세한 질서를 되찾아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것은 흠집잡기나 폭로가 아니다. 문학의 기록이다. 신경숙과 내가 죽어서 흙이 된 다음에도 한국어가 살아있는 한 한국문학은 존재할 것이다. 후세의 한국문인들과 한국문학 독자들마저도 표절 콤플렉스와 그 치욕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비록 당장 좋은 결과를 못 얻는다고 해도 기록으로 남긴다면 언젠가는 그 기록이 진실을 다시 들춰 잘못된 현실을 치유해주리라 굳게 믿었다. 문학이 타락하면 사회가 타락한다. 사실 모든 질문과 대답은 허핑턴포스트 기고문에 다 담겨 있다. 다시 읽어 보길 권한다.”

-16일 의혹 제기 이후 신씨 만큼이나 심경이 복잡했을 텐데.

“힘겨웠다. 사태가 나의 진의와 소망과는 다르게 진행되거나 변질될까 봐 마음 졸였다. 낮에는 상황을 지켜보며 적절한 반응을 내놓거나 침묵하고 밤에는 술을 많이 마셨다. 매일 그랬더니 몸이 망가졌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모함과 협박도 받았다. 그 증거들을 모아 뒀다. 오늘 이후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생각이다. 변호사에게 자문을 받아 뒀다.”

-앞으로의 계획은.

“남은 인생, 문단의 공적인 자리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서 지낼 것이다. 문인들이 모인 곳은 아예 가지 않을 생각이다. 작품을 발표하고 책을 출간하기는 하겠지만, 오로지 아웃사이더 작가로서 묵묵히 살아가겠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이응준=1970년 서울 출생. 한양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90년 시로, 94년 소설로 등단. 시집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 등. 소설집 『무정한 짐승의 연애』 등.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등. 2008년 각본·감독한 단편영화 ‘Lemon Tree’가 파리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등에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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