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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반포 한양아파트 옆 경원중이 방학 앞당긴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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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석면 날리면 안 된다”

경원중학교(왼쪽) 바로 옆에 위치한 반포 한양아파트.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이 아파트는 다음 달부터 석면 자재를 제거할 예정이다. [김경록 기자]

아파트 석면 제거 시기 놓고 갈등
학부모 “방학 때 공사해” 조합 “못 미뤄”
공사 강행 직전 방학 기간 중 제거 합의
 

서초구 잠원동의 경원중학교는 7월 18일부터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원래 7월 21일부터 방학이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그 일정을 사흘 앞당겼다. 메르스 때문이 아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반포 한양아파트 재건축 공사 때문이다. 아파트의 석면을 제거하는 작업을 방학이 시작된 이후에 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이런 결정이 이뤄지기까지 아파트 조합과 경원중 학부모들은 상당한 갈등을 치러야 했다.

 석면을 둘러싼 갈등은 과거에도 있었다. 2006년 반포동 원촌중학교 인근 주공3단지 아파트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석면이 다량 검출됐고, 학부모와 환경단체의 반발로 공사는 중단됐었다.

 최근 강남 일대에는 아파트 재건축이 잇따르고 있다. 1970년대 강남 일대 아파트는 석면 자재를 사용해 지었다. 앞으로의 재건축 과정에서 석면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를 둘러싼 갈등이 불가피하다. 반포 한양아파트와 경원중 사이에 불거진 갈등의 전모를 들여다봤다.

반포 한양아파트 석면 73만t 추정

학부모들의 항의성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있다.

총 4개동으로 구성된 반포 한양아파트는 인근 신동아·우성아파트와 함께 70년대에 세워졌다. 건축 당시엔 석면 자재가 화장실·복도 등에 두루 쓰였다. 이 아파트 칸막이·천장재의 석면 규모만 해도 73만t(환경보건시민센터 추산)에 이른다. 석면은 내구성이 강하고 값이 저렴해 70년대 대표적인 건설자재로 꼽혔다. 하지만 그 유해성이 밝혀지면서 2009년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석면 가루는 폐에 암이나 악성종양을 유발할 수 있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은 “면역력이 약한 학생들은 소량의 석면을 접해도 건강을 크게 해친다”고 말했다. 아파트 재건축 공사 전에 석면을 먼저 제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원중학교는 학생이 없는 방학 때 석면 제거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경원중과 반포 한양아파트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붙어있어서 석면 가루를 학생들이 마시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재건축 조합 측은 “공사 일정을 미룰 순 없으니 학사 일정을 변경하라”고 했고, 경원중 측은 “기말고사(7월 6~9일)가 코 앞인데 학사 일정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맞섰다. 조합 측은 또 “뜯어낸 석면 부스러기를 음압이 가능한 비닐로 감쌀 예정이다. 학기 중 공사를 해도 학생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방학 끝난 후 소음·분진 갈등 가능성 남아

최근 학교와 학부모는 재건축 조합 측에 석면 가루가 유입되지 않는 급식소 설립을 요청했다. 조합 측은 공기청정기를 갖춘 급식소 설립비 5억원을 대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당시 학부모들은 이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경원중 학부모들은 지난 12일 조은희 서초구청장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급식시설 설치를 요구했지만 당시 조 청장은 “일단 교육청에 예산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학부모는 “지금 예산을 확보해도 급식소 설립은 내년에나 가능한데 석면 가루 피해를 막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결론이 나지 않은 가운데 공사를 강행하려던 조합은 석면 가루를 막기 위해 펜스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8일 오전 8시부터 실시된 펜스 설치 공사는 “소음으로 수업 진행이 어렵다”는 학교와 학부모 측 항의로 잠시 중지됐다.

 양측이 극적인 합의에 도달한 건 지난 19일이다. 재건축 조합이 석면 제거 작업을 방학 기간중으로 미루는 대신, 학교 측은 방학을 사흘 앞당겨 시작하고 개학일도 예정보다 일주일 미루기로 했다.

 석면 해체 작업에는 약 2주가 걸린다. 그리고 이후 6주간 아파트 건물 철거를 진행한다. 6주간의 방학이 끝난 후에도 학생들은 건물 철거에 따른 소음과 분진에 시달릴 수 있다. 조합 측은 “일단 일정이 조율돼 당장 갈등은 사그라졌다. 급식소 설립과 관련해선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글=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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