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는 여름 휴가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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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백화점에 근무한지 금년 12월로 5년째다.
하루종일 음악을 들을수 있으며 계절을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느낄수있는 것이 백화점 근무이긴하나 「서비스」란 말이 노예에서 유래됐다는 것을 실감할만큼 남들이 쉬는 일요일이나 명절, 그리고 12월에는 더욱 바쁘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서먹서먹함은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틈나는대로 테니스를 즐기며 극복했다.
후배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여가를 즐기라고 말하곤 하지만 황금연휴라는 말은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치부하고 지낸다.
지난 8월에는 하계휴가를 이용하여 직장동료들과 함께 만리포 해수욕장을 다녀왔다.
취사도구와 3일분의 주·부식을 배낭에 꾸려넣고 아내와 4살된 유진이의 손을 잡고 만리포행 전세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바닷가로 나가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부드러운 모래위에서 뛰어 놀았다.
도착전날 해질녘에 2km쯤 떨어진 등대가 있는 바위까지 걸었다. 다리가 아프다는 유진이에게 오늘저녁 매운탕감으로 올라올 물고기 얘기를 해주며 해변을 걸었다.
어둠이 깔린후 나는 바위에 앉아 미꾸라지를 미끼로 릴낚시를 던지고 또 던졌다. 끝내 매운탕감은 구경조차 못했다.
면목이 없어 아내와 유진이를 조랑말이 끄는 마차에 태워주었다.
식사준비때는 내가 다하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어기기도 했지만 휴가기간중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과 동료들과의 허물없는 대화로 몸과 마음은 더욱 건강해진것같다.
요즘 백화점은 1년중 가장 매상이 많은 달을 맞아 휴일없이 계속 개점중이다. 휴일을 제대로 찾아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속에서도 백화점에는 하한기인 내년 여름휴가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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