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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가 남북관계에 주는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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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수석
고수석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3000 구상’이다. 이 구상은 북핵 상황 진전에 따라 단계적으로 경제·교육·재정·인프라·생활향상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10년 내 북한 주민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에 이르도록 돕겠다는 대북전략이다. 하지만 북한이 이에 반발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남북 교류는 거의 단절됐다. 북한이 이 구상에 반발한 숨은 이유는 비핵·개방보다 ‘3000’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북한 소득이 1인당 3000달러가 되면 지금과 같은 주민 통제가 어려울뿐더러 정치적 요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구상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잊혀졌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다. 이 프로세스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고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려는 정책이다. 하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남북한은 ‘네 탓’만 하다 세월을 허송했고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대화마저 끊어졌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올해마저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냉정하게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남북관계는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정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다. 주변 환경이 과거와 달리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혼자 해결하려고 하면 남북관계도 메르스 사태와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미국도 혼자 세계문제를 해결하기 힘겨워 핵·기후변화 등 난제를 중국과 전략대화를 통해 지혜를 모으려고 한다. 독불장군의 시대는 끝났다. 어려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다 보면 오히려 문제가 더 꼬이게 되거나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메르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듯이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여야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후손들에게 분단의 고착화를 더 이상 선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여야의 의견이 다른 부분은 다음으로 미루고 의견이 같은 부분부터 먼저 시작하면 된다. 2012년 대선 당시 여야 후보의 대북정책은 제목만 다를 뿐 공약의 90%가량이 비슷했다. 남북관계의 교착이 이어지면 2017년 대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실행된 게 없기 때문이다.

 5년 단임제 아래서 5년간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란 어렵다. 여야가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을 만들지 않으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마저 선거 때 표를 모으기 위한 포퓰리즘에 오염돼선 안 된다. 더 이상 후손들에게 부담을 떠넘길 수도 없지 않은가.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