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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식 독감’에 엄마들이 떠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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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은 감염자의 침방울이 주요 전파 통로다. 날씨가 더워지자 자녀를 수영장에 보내도 되는지 궁금해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한 언론이 “메르스 바이러스는 수분에 약하다. 물에 들어가면 대부분 사멸한다”는 감염 전문가의 견해를 소개했다. 그러자 ‘침방울은 수분이 아니냐’는 등 반박 댓글이 줄을 이었다.

 국내 연구자의 의견을 믿지 않는 게 전부가 아니다. 엄마들은 해외 조사단의 발표에도 의구심을 드러낸다. 학교 휴업이 확산되던 때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이 수업 재개를 권했다. 당장 엄마들 사이에선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의 상황이 다른데 WHO가 책임질 거냐”는 반응이 나왔다.

 엄마들이 귄위를 부정하게 된 것은 정부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가정 수입의 상당 부분을 사교육비에 쓰고, 엄마들이 자녀를 학원에 실어 나르는 나라다. 그래서 메르스 사태에 가장 민감한 이도 자녀의 감염을 걱정하는 엄마들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주부는 “메르스의 국내 유입을 막지 못한 것은 그렇다 쳐도 감염자가 확산되던 때부터 정부의 설명이 맞는 게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환자 격리에 구멍이 뚫리면서 엄마들이 종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내용을 주고받는데도 정부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3차 감염이 없을 것이란 예상이 무색하게 4차 감염자가 나왔다. 질환이 있는 고령자만 위험한 줄 알았는데 30대 감염자도 상황이 좋지 않다.

 정부가 정보 공개로 입장을 바꿨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60대 남성이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있는 병원에 들렀다는 내용이 17일 강남 엄마들 사이에 퍼졌다. 해당 병원이 문을 닫고 같은 건물에 들어찬 학원들이 소독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정부가 만든 메르스 포털에는 18일까지도 이 사실이 공개되지 않았다. 엄마들은 보건소와 통화해 해당 감염자가 격리망에 잡히지 않은 채 수일 동안 돌아다녔다는 것까지 알아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뒷북을 치니 인근 중학교 학생이 해당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는 식의 잘못된 루머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메르스는 엄마들에게 각자 알아서 자녀를 지켜야 하는 문제가 되고 말았다. 한 주부는 “메르스 감염은 복불복이 됐다. 감염자와 접촉한 교사도 수업을 했다는데 우리 아이가 감염자와 접촉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엄마는 “세월호 때도 결국 엄마가 수학여행을 안 보내는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 메르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내가 극성을 떨겠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등학교를 찾아 “메르스는 중동식 독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안심을 시켜도 이러니 효과가 없다. 여름방학을 앞당겨 달라거나 자체 휴업하겠다는 엄마들이 여전하다. “믿을 데가 없다. 특히 책임지지 않는 정부가 그렇다.” 메르스 공포를 줄이려면 정부가 안전할 것이라고 강조만 할 게 아니라 이런 엄마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