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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앞으로 병문안 떼로 가지 말자 했다” … “잘잘못 따질 때 아니다, 기본만 지키면 메르스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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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메르스 발생 한 달. 온 국민은 몸살을 앓았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제각기 낯선 감염병과 싸움을 벌였다. 우리는 무엇을 경험했고, 어떻게 버텨냈을까. 또한 메르스를 종식시키기 위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고통을 이겨내고 헌신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숨은 전사들

지난 한 달간 메르스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 인터뷰한 12명 중 메르스 환자인 포항의 A고교 교사 윤모씨와 자가격리 중인 박모씨는 얼굴 공개를 원하지 않아 사진을 싣지 않았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용식(33·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

 “지난달 20일 평택을 시작으로 전국 메르스 발생 병원 10여 곳을 발로 뛰며 감염원과 감염 경로를 조사하고 있다. 초창기에 위치추적 등 개인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어 자주 벽에 부닥쳤지만 범정부조직이 생겨난 뒤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조사하게 됐다. 국내 역학조사관은 34명인데 추적 조사할 대상은 계속 늘어나 잠잘 시간을 쪼개 일하고 있다.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현장에 매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메르스 확산세가 야속하기만 하다. 6번 환자처럼 저희가 가정했던 리스트 밖에서 환자가 나올 때 가장 허탈하다. 환자가 나오면 제일 먼저 달려나가 현장을 뒤지고 환자와 마주 앉아 인터뷰하는 게 우리들의 일이다. 나도 두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전장의 최전선에 있기에 달려가는 메르스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앞질러 가 막고 싶다.”

 ◆정병성(59·평택보건소장)

 “지난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격리 대상자에게 전화를 돌려 상태를 체크하고 집 앞에 지키고 서 있다가 욕을 먹기도 했다. 그래도 또 찾아갔다. 보건소 직원 모두 한 달 내내 밤낮이 없었다. 한두 시간 겨우 자고 나와 일한다. 처음에는 일이 마구 쏟아져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미숙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이 일이 끝나고 우리 보건소에 돌아올 후폭풍이 얼마나 거셀지 벌써 겁이 난다. 1983년부터 평택에서 근무했고, 올해가 퇴임하는 해다. 건강이 안 좋아 6월에 명예퇴직을 신청하려 했다. 업무에 충실하지 못할 바엔 떠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지금 자리를 내려놓으면 회피하는 게 되니 그럴 수도 없다. 제대로 마무리 짓고 명예롭게 떠나고 싶다.”

 ◆엄중식(48·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즉각대응팀 소속)

 “ 이번 메르스 사태가 생각보다 오래갈지 모른다. 팀 내에선 9~10월까지 내다보는 분도 있다. 우리 의료계는 기술은 세계 최고수준 이지만 감염병 전파를 막기에 필요한 것을 잘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 환자에게 병원이 노출될 때마다 다른 환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이번 사태는 어떤 한 기관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오랫동안 누적된 우리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거다. 의사로서 의료계의 불편한 진실을 직면할 때 괴롭다. 즉각대응팀은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고 아픈 부분에 반창고 바르듯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나 몰라라 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제 장기적인 대책을 같이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메르스를 물리치고 언제 또 닥칠지 모르는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다.”

 ◆홍순호(47·강남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파트장)

 “검체가 오면 3~4시간 안에 결과를 내놓으려 노력했다. 5~6명이 돌아가면서 근무한다. 사태가 더 악화되면 상주할 계획이다. 오전 2~3시까지 일하다 집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오전 6시에 다시 출근한다. 힘들긴 하지만 어차피 한시적인 거다. 신종 플루를 겪지 않았나. 잠 못 자는 게 힘들지만 저희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음압실에서 보호복을 착용하고 일하는데 숨 쉬기가 힘들다. 검체의 질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객담(가래)을 뱉어야 한다. 일곱 번 검사 만에 확진한 환자가 있는데 그때 잡아내지 못했다면 지역사회 감염을 유발했을 수도 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끼는 게 중요하다. 역병처럼 생각해 너무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검체를 다루는 사람인데 지금 멀쩡하지 않나.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는 게 필요하다.”

 ◆박소현(30·여·질병관리본부 핫라인 근무자)

 “지난달 말부터 일주일에 두세 차례 하루 11시간 정도 메르스 핫라인에서 상담원 역할을 하고 있다. 하루에 몇 통의 전화가 오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야간근무를 해도 다음날 퇴근하지 못하고 다른 메르스 관련 일을 한다. 술 취하신 분이 “너희들이 제대로 한 게 뭐 있느냐”며 욕을 한다.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까지 들먹인다. 마음에 상처를 정말 많이 받는다. 아기가 걱정돼 전화한 부모가 설명을 다 듣고 안심할 때 뿌듯했다. 또 ‘새벽까지 고생이 참 많다’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은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따질 때가 아닌 것 같다. 의료진은 소명을 갖고 치료하며, 자가격리 대상자는 정부 지침에 잘 따르는 등 이런 기본을 지키는 게 중요한 때다.”

 ◆최은영(51·전북 고창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장)

 “메르스 지식이 별로 없어 처음엔 자가격리 이탈자(서울에서 골프 치러 온 60대 여성)를 찾으려 나서니 겁이 났다. 하지만 나는 공직자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국가 녹을 먹고 사니까 팀장인 내가 나섰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했는데 잘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을 상대로 탐문했고, 30분 후 통화가 돼 임무를 완수했다. 그 일을 끝내니 안심이 됐다. 빨리 찾아내 격리했으니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때만 해도 기초적인 대응법을 모르는 상태였다. 지금은 예방법이나 진단법이 많이 나와 있어 큰 걱정은 없다. 허위 신고를 하거나 자가격리자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참아 달라. 허위 신고로 출동한 적이 있는데 엄청난 인력 낭비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개인의 양심을 지켜야 한다.”

환자·격리자

◆윤모씨(58·경북 포항 A고교 교사·메르스 환자)

 “경북의 첫 확진환자다. 7일 병원에 입원해 현재 음압병동에 있다. 입원 중에 1차 음성, 2차 양성, 3차 음성 판정을 받고 마지막 4차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별로 열이 없어서 몸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병원 생활은 좀 답답하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TV·전화도 있고, 가끔 의료진이 과자도 준다. 객담(가래)을 빼내 검사하는 것이 좀 힘들다. 하지만 그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 내가 갔던 병원이 문을 닫았고 120명 이상이 격리됐다. 정말 미안하다. 메르스를 이기려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들었다. 내가 직접 겪어보니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메르스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박모씨(76·여·자가격리 대상)

 “ 두 손자를 봐주러 옥천 딸네 집에 갔다가 무릎이 안 좋아 병원에 갔는데 그 병원이 문제가 돼 4일부터 자가격리 대상이 됐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둘째 손자 초등학교는 휴업했고 중학생인 큰손자는 할머니가 격리자라고 학교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딸도 나랑 아이들 챙긴다고 일을 못 나간다. 나 때문에 가족이 전부 격리자가 됐다. 그게 더 괴롭고 미안하다. 사위 볼 면목도 없고. 이번 일로 개인 위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걱정돼 전화한 친구들에게 ‘누구 아프다고 병원에 떼로 문병 가고 그러지 말라’고 얘기해 준다. 각자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한다.”

 ◆우종하씨(43·메르스 완치자)

 “지난달 20일 평택성모병원으로 아들 병문안을 갔다가 부부가 함께 메르스에 걸렸다. 나는 18일에 퇴원했고 아내는 아직 병원에 있다. 1997년에 결혼했는데 아직 식을 못 올렸다. 아내가 건강하게 나오면 결혼식을 올릴 거다. 아이들과 제주도 여행도 가려고 한다. 병원에 갇혀 있는 동안 답답하고 외로웠다. 아픈 것보다 그게 더 힘들었다. 병에 대한 생각은 별로 안 했다. 처음에는 오한이 있었다.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났다. 고열 때문에 두통도 심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좋아져서 별걱정 안 했다. ‘낫는다고 하니까 낫겠지’ 했다. 메르스 이기는 법은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국민이 마음을 편하게 가졌으면 좋겠다. 의료진이 환자와 대화를 많이 해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의사·간호사

◆이왕준(50·명지병원 이사장·병원협회 메르스대책TF 위원장)

 “메르스 사태에서 병원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해결사다. 다른 때와 달리 병원이 감염의 매개체가 됐다. 감염된 환자들이 병원에 오면서 병원이 또 오염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하지만 병원 말고는 메르스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이러니 의료진에게는 고마워하면서 그들의 자녀들은 학교에 오지 못하도록 하는 양면성이 나타나고 있다. 또 우리나라 병원의 90%가 민간병원이다 보니 공공병원과의 역할 분담이 원활치 않았다. 이번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도망가지 않고 용기 있게 진료하는 것을 보고 의사들의 사명감이 투철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스템은 고쳐야 하지만 의료진은 절대로 엉터리가 아니다. 메르스 사태는 이미 요르단강을 건넜다. 불난 데 물 부으면 꺼지는 것 같은 상황이 아니라 지진처럼 여진이 계속될지 모른다. 하지만 현장의 의료진을 믿어 달라. ”

 ◆이희성(45·한림대 동탄성심병원 흉부외과 교수)

 “확진자 중 처음으로 숨진 25번 환자의 진료를 맡았다. 단순한 폐렴이나 패혈증으로 치료하다 갑자기 메르스 진단이 나왔을 때 정말 당황스러웠다. 당시 중환자실에 근무했는데 다른 의료진이나 환자들에게 전염돼 문제가 일어나는 게 제일 걱정이었다. 25번 환자를 처음 봤을 때는 혼수상태였다. 하지만 초반 상태가 호전되면서 며칠간은 인공호흡기를 빼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그 사람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이런 환자도 살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결국 환자를 잃었다. 그때 정말 힘들었다. 메르스에 걸린다고 모두가 생명이 위험한 상태에 빠지지는 않는다. 메르스 발병 초기에는 메르스가 어떤 병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막연한 공포심에 휩싸이게 됐는데 지금은 다르다. 개인 위생과 건강을 확실히 관리하고 만약 격리 대상자가 된다면 격리 지침을 확실히 따라야 한다.”

 ◆홍민정(40·대전 을지대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90번 환자가 확진 판정이 나온 8일부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으로 가지 않고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일반 환자 20여 명을 간호사 10명과 함께 돌본다. 처음 확진자가 나오고 코호트 격리 조치가 취해졌을 때 하루에 100통 넘게 항의 전화가 왔다. 주위의 시선이 차가웠다.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다. 무엇보다 가족을 보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 어제는 7살배기 둘째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10일 가까이 참아온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처럼 집에 가지 못하는 엄마 간호사가 네 명이 있는데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우리도 사람인데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도망가면 이 자리는 누가 지키겠나. 각자 서 있는 그곳이 메르스 전선의 최전방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면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취재팀=이에스더·위성욱·김윤호·박유미·김호·노진호·신진·박병현·임지수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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