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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표절 해명 부적절” 사과 … 문단 “신경숙이 결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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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창비 출판사가 한발짝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소설가 신경숙(52)씨의 일본 소설 표절 논란에 대한 하루 전날의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하는 내용의 입장글을 18일 오후 발표했다. 표절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전날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이에 앞서 창비는 17일 신씨의 단편소설 ‘전설’과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70)의 작품 ‘우국’ 사이에 내용의 유사성은 일부 있지만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하지만 인터넷 홈페이지에 강도 높은 비판글이 잇따랐다.

 18일 창비의 사과 표명에도 불구하고 신씨의 소설 표절 논란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상당수 문인들은 이제라도 신씨가 직접 나서 표절 여부에 대해 명쾌하고 충분한 해명을 하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창비는 이날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본사 문학출판부에서 내부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점을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독자들이 느끼실 심려와 실망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표절 논의가 자유롭게 생산적이 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작가와 논의해 독자들의 의문을 풀리도록 노력하며 ▶내부 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했다.

 창비가 하룻반에 전격적으로 사과함에 따라 신씨의 소설 표절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논란이 사그라질지는 미지수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신씨와 창비의 표절 부인을 비판하는 글이 하루 종일 올라 왔다.

 특히 창비의 표절 논란 대응방식에 실망한 직원이 ‘창비직원Z@unknownmemberz’라는 아이디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회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이 직원은 표절 의혹에 대해 회사가 입장을 발표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작가와 서점 관계자 등을 만나게 돼 당혹스러웠다며 계정을 만든 이유를 밝혔다. 일종의 ‘내부 고발’이다. 또 ‘한 동료가 창비가 아니라 창피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라는 트윗도 올렸다.

 동료, 선·후배 작가라는 동류 의식이 유달리 강한 문단 특성상 문인들은 대부분 신씨의 표절 의혹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하지만 신씨가 단 세 문장으로 이뤄진 전날의 입장글만 창비에 전달한 채 모습을 감출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공개석상에 나서 표절 여부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중견 평론가 A씨는 “이제 공은 신경숙씨에게 넘어갔다. 신씨가 결단해야 한다”고 했고, 시인 B씨는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안 읽었다는 해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큰 충격에 휩싸였을 독자들을 충분히 다독거려주고 표절이 아니라면 의심을 해소시켜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초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평론을 써서 신씨의 작품 세계를 면밀하게 조명하지 않는 당시 평단을 비판했던 문학평론가 김명인씨는 “문제의 소설 대목은 명백한 표절이다. 지금 최선의 방법은 신씨가 절필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하나인 신씨는 공인 중의 공인”이라며 “절필이 어렵다면 표절 사실을 시인한 후 당분간 자숙하겠다고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신씨의 단편 ‘작별 인사’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장편 『물의 가족』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평론가 박철화씨는 “당시 문제삼지 않았을 뿐이지 이번에 논란이 된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며 “신씨에게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실수였다고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씨의 이번 표절 논란은 문학계 바깥으로 번졌다. 고려대 교수를 지낸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18일 신씨를 사기와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현 원장은 “표절 문단을 일벌백계해주고 창비와 같은 출판권력을 바로 잡아 달라”며 이날 고발장을 접수했다.

신씨의 2008년 장편 『엄마를 부탁해』와 2010년 장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일부 내용이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를 표절해 문학동네·창비 출판사의 업무를 방해했고, 그에 따라 인세 등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이다.

신준봉·이유정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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