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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해당 작품 알지 못해” … 이응준 “반성 않는 문단 치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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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소설가 신경숙(52)씨의 표절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17일 신씨가 문제의 단편소설인 ‘전설’이 실린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을 출간한 출판사 창비를 통해 표절한 사실이 없음을 명백히 함에 따라서다.

 후배 소설가 이응준(45)씨는 하루 전날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 기고글에서 ‘전설’의 한 대목이 일본의 극우 성향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1925~70)의 단편 ‘우국’의 일부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본지 17일자 12면>

 신씨는 이날 입장 표명 글에서 “오래전 (미시마 유키오의)‘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이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또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독자들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며 “진실 여부와 상관 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게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응준씨는 “기어이 반성하지 못하는 문단이 너무도 치욕스러워 그저 죄스러울 뿐”이라며 자신의 블로그에 반박글을 올렸다. 단순히 일회성 문제제기로 그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출판가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 한 사람인 신씨가 2000년대 초반에 이어 또다시 표절 논란에 휩싸인 데 대해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출판계에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출판계·네티즌 논란 확산=신경숙의 1996년 작품인 ‘전설’에는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김후란씨가 83년 번역해 소개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의 문장,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와 매우 흡사하다는 주장이다.

 표절 논란은 당사자인 신씨와 이씨를 넘어 출판사, 네티즌 등으로 신속하게 확산되는 모양새다.

 출판사 창비 역시 신씨와 함께 이날 해명자료를 냈다. 일본의 2·26 쿠데타를 소재로 한 ‘우국’과 한국전쟁을 그린 ‘전설’은 유사성을 찾기 어렵다며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 (…)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언론인이자 작가인 고종석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창비의 주장은 “우주적 궤변”이라며 “이게 다 신경숙씨가 창비에 벌어준 돈 탓이다. 창비는 한때 거룩했던 제 이름을 돈 몇 푼과 맞바꿨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응준씨는 자신의 블로그 글에서 “문학의 진정성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었다”며 “신경숙과 창비의 이러한 반응에 대하여서는 한국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독자 분들께서 추상같은 판단을 내려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신씨는 그동안 여러차례 표절 시비에 시달렸다. 소설 ‘딸기밭’(1999)이 재미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일부를 도용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출판가에서는 문제의 대목은 명백한 표절이 맞다는 반응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학편집자는 “특정한 표현과 문장 흐름의 유사성 등에서 명백한 표절이라고 본다. 신 씨의 표절 문제는 오래전부터 문단에서 이야기되어 왔지만 한국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인지 논란이 조용히 무마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방송작가 일을 했던 신씨가 표절에 대한 엄격한 자기 검열 없이 다른 사람의 글을 가져다 쓰는 습관이 배 문제가 자주 불거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판사가 표절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작가 감싸기에 나서 화를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표절 논란=문학·출판계의 표절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92년에는 풍수소설 『명당』이 이청준·김원일 등의 작품을 짜깁기했다는 주장이 나와 작가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같은 해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출간한 이인화씨는 표절시비가 일자 문학적 효과를 위해 일부러 남의 작품을 가져다 쓴 ‘혼성모방 기법’이라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최근에는 KBS 드라마 ‘프로듀사’에 등장한 출판사 크눌프의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가 민음사와 문학동네의 번역본을 뒤섞어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학동네는 이 문제와 관련해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으며, 민음사도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출판물의 표절 여부를 가리는 명확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출판평론가 장동석씨는 “신경숙씨 소설의 문제가 된 그 문단만 놓고 본다면 명백한 표절로 보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서사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전문 박찬훈 변호사는 “현재 저작물의 경우 ‘몇 단어가 같으면 표절’이라는 식의 법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논란이 됐을 경우 표현이나 대사의 유사성 즉 ‘문자적 유사성’과 작품의 구도나 캐릭터 등 ‘비문자적 유사성’을 동시에 살펴 판단을 내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영희·한은화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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