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의 「왜」는 해적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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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경=신성순특파원】일본이 날조된 고대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비문을 멋대로 해석해온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중공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왕건군 소장의 연구논문이 오는 12일 일본에서 출관될 예정이어서 한·일 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이 논문에서 왕소장은 비문중의 「왜이신묘년내도해파백잔○○○나이위신민」 이란 내용의 「왜」 는 일본측이 주장하는 「야마또」 (대화)정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북구주 일대의 해적집단을 지칭하는 것이며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것이라고 일본 사학계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일본측은 이 비문내용이 「391년 (신묘년)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신라를 깨뜨리고 신민으로 삼았다」 고 멋대로 해석, 4세기 말에 이미 「야마몬 조정에 의한 통일국가를 이룩하고 세력을 해외에까지 뻗쳤다고 주장해 왔으며 이처럼 날조된 고대사를 과거 한반도 침략, 식민통치의 근거로 이용해 왔다.
그러나 일본에 통일국가가 형성된 것은 훨씬 뒤인 7∼8세기경이라는 사실은 지난 9월 전두환대통령 방일시 일본천황도 공식으로 밝힌바 있다.
광개토대왕비문에 대해서는 사학자인 일본 명치대학의 이진희강사가 「명치시대 일본 육군참모본부가 대륙진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개조한 것」 이란 주장을 발표, 한일학계에 큰파문을 던졌으며 높이 인정돼 왔다.
이점에 대해 왕소장은 「개조됐다는 글자는 탁본에서 잘못 찍히거나 판독에 잘못이 있었던것」 으로 지적, 이를 부인하고 있다.
광개토대왕비는 중국 길림성집안현에 있으며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374∼4l2)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대왕사후 414년에 건립된 높이 6·34m의 거석비석으로 4면에 7백75자가 새겨져 있으며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으나 중공은 이의 공개를 피해왔다.
왕소장은 81년4월부터 10월에 걸쳐 이 비문을 면밀히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때 비면에 석회를 칠해 탁본을 떠서 암매해온 부자 2대의 행적이 밝혀지기도 했다.
12일 출판을 앞둔 「호대왕(광개토대왕)비의 연구」 (출판사 경도 웅연사) 에는 금년에 촬영된 비의 사진과 3년전에 뜬 탁본등이 실려있으며 중공의 길림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한편 명치대의 이진희씨는 비문 개조설을 부인한데 대해 왕소장의 논문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반론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왕소장의 논문출판을 계기로 이진희씨를 비롯한 일본·중공 사학자들은 내년 l월 합동세미나도 추진중이어서 광개토대왕비를 둘러싼 한일교류사는 다시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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