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철도청 유전개발 문건] "국정원·외교부도 사업 양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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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본지가 14일 입수한 유전개발 프로젝트 문건은 철도청(현 철도공사)과 한국철도교통진흥재단이 작성했다. 제목은 '사할린6광구-러시아 페트로사㈜ 인수투자'라고 돼 있다. 철도청이 국가 전략산업인 에너지 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문건 중에는 유전사업.대(對)북한 건자재사업에 청와대뿐 아니라 국가정보원.외교통상부 등 정부 기관이 비공식적으로 관여했고, 추후 공식 협의를 통해 사업을 확정지을 것처럼 나타나 있다.

유전사업의 경우 매장량 13억 달러(약 1조5000억원)의 35%로, 연간 198억원의 투자수익이 날 것으로 추산했다. 또 북한 건자재 사업은 매달 34억여원의 수익이 기대된다고 봤다.

이 문건의 작성 시기는 지난해 7~8월. 이때는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인 전대월(도피 중) 하이앤드 사장과 석유 전문가인 허문석 박사가 철도청에 유전개발 사업을 제의한 뒤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사업을 급박하게 추진하던 시기다.

문건이 철도청 등에서 만들어진 것은 확실하지만 문건 제작자의 작성 의도 및 내용의 진위 등에 따라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할 수 있다.

문건은 'VIP(노 대통령 수행 일행을 지칭)의 러시아 정상회담 때 페트로사를 한국 측이 인수하는 조인식을 양국 정부가 갖는 것'으로 돼 있다. 이때 러시아 방문자 명단 작성 업무를 열린우리당 이광재 '산자부 위원'이 총괄하는 것으로 적시됐다. 그러나 지난해 노 대통령의 실제 방러 기간은 9월 20~23일이었고, 이 의원은 산자부 위원이 아니라 국회 산자위 소속이다. 문건 내용이 진실이라면 이 의원의 소속 상임위에 관한 부분은 오기이며, 정상회담 날짜가 틀린 것은 잘못된 정보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사할린 유전사업을 청와대 외교안보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다고 적고 있으나, 청와대 측은 공식적으로 그런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 경우 '청와대 외교안보위'는 대통령의 방러를 앞두고 급조된 비선조직으로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했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철도청이 산하 재단의 정관까지 바꿔가며 유전개발 사업에 뛰어든 뒤 18일 만에 계약을 하는 등 졸속 추진한 배경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동행했던 윤성규 당시 산자부 자원정책심의관은 "사할린 유전에 대한 얘기는 듣지 못했고, 철도청에서 누가 찾아와 실무 협의를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산자부가 석유개발을 한다 해도 석유공사를 앞세우지 철도청 산하기관이나 민간인을 통하겠느냐. 공식 루트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왕영용 철도청 사업개발본부장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유전개발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대통령 측근인 이광재 의원을 팔았을 수 있다. 전대월씨와 허문석씨에게서 사업참여 제의를 받은 왕 본부장이 개인적으로 공을 세우려고 철도청 고위 간부들에게 정부 주요 기관과 이 의원이 유전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것처럼 과대포장했다는 것이다.

검찰도 이 문건을 입수해 내용의 진위를 정밀 검토 중이다.

한 수사 관계자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조강수.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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