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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진보와 보수, 누가 더 인도적일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6.15남북공동선언 15주년 기념식이 메르스 여파로 취소됐다. 박정희 정부시절 7.4남북기본합의서와 김대중 정부시절 6.15남북공동선언은 냉전시대와 탈냉전시대를 대표하는 한반도평화번영의 전략적 대화였다. 하지만 북한의 핵 위협과 국지적 도발이 남북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이러한 합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에 따른 남남갈등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으로 비화되어, 대북정책에 대한 합리적 판단과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와 보수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초점을 맞춰야 하는 화두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인도적 개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원하고 있고 전쟁도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친북반북의 소모적인 논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정의롭고 효과적인 인도적 개입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인도적 개입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북지원의 문제(경제적 개입)와 북한 인권문제의 거론(정치적 개입)이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이와 관련하여 3가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전국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RDD-유무선 50%씩 전화로 조사하였고, 95%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3.1%다.

첫째 ‘대북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54%)이 동의한다는 의견(46%)보다 높았다. 둘째 ‘대한민국 정치가 북한 인권에 대해’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51%)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27%)보다 높았다. 마지막으로 '국내 인권에 더 관심을 보이는 세력‘에 대해 진보세력이라는 의견(47%)이 보수 세력이라는 의견(28%)보다 높았다.

위 여론조사결과의 밑바닥에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개입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신호가 담겨 있다. 신호 그 자체가 결론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질문을 낳기도 한다.

예컨대 진보가 국내 인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서도,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정의로운 일일까. 반대로 보수가 북한 인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서도, 국내 인권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정의로운 일일까.

한 발 더 나가보자. 진보가 지속적인 대북지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북한 인권문제에 소홀한 것이 북한정권에 우호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보수가 정치군사적 상황에 따라 대북지원을 중단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북한정권을 자극하여 불안한 안보정국을 조성하기 위함은 아닐까.

결국 진보는 북한 인권에 관심을 높여야, 대북지원 사업에 대한 국민신뢰를 높일 수 있다. 보수는 국내 인권문제에 관심을 높여야,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민주주의 정신을 관철하는 일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특히 경제적 궁핍과 정치적 박해에 대한 인도적 개입은 더욱 그렇다. 인도적 개입이 필요할 때 방치해 두면 더 크고 복잡한 군사적 개입까지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가 스스로가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균형 잡힌 인도적 개입이 필요하다.

훗날, 북한주민들이 진보에게 우리의 생명과 인권이 반인류적인 방식으로 박해받을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지, 보수에게 우리가 비참하게 굶어 죽어갈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지 준비해 둬야 할지도 모른다. 남북통일의 시점이 많이 늦춰진다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남북문제는 현재시점에서 다루기보다 미래시점에서 다루는 것이 더 정의롭고 효과적인 선택일 수 있다.

6.15남북공동선언 15주년 기념식이 메르스로 취소됐지만, 균형 잡힌 인도적 개입은 그 어떤 이유에서든 방해받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진보와 보수가 경쟁해 오던 이념논쟁으로 울퉁불퉁해지고 구멍이 난 운동장은 버리고, 정의롭고 효과적인 새로운 운동장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시합을 계속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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