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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죽과학공업단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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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비상위험국면-. 이것은 대만의 권력교체문제나 정치자유화 요구에 관계없이 경제부문에서곧잘 쓰여지고있는 말이다.
올해 무역흑자가 작년의 거의 2배에 달하는 80억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가 윤택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대만의 경제학자들은 현재를 비상국면으로 표현하고있다. 한국처럼 중공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고 과학기술도 밑바탕이 허약해서 앞으로의 성장을 지속시켜 나가기가 힘겹다는 뜻에서 적색경보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보는 한국의 대만 추월을 경계하고 대만기업들이 첨단산업 쪽으로 달려가도록 매질하는 자극제로 남발되기도 한다.
대북에서 남쪽으로 90㎞떨어진 신죽과학공업단지는 대만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있는 이른바 테크너폴리스(기술도시)다. 지난 80년 아시아에서는 맨처음으로 세워졌다는 이 공업단지에는 1년에 15개정도의 새로운 공장들이 들어서고있다. 주로 전자·정밀기계·유전공학관계 공장들이다.
신죽과학공업단지의 과경성투자촉진센터주임은『1차로 조성된 63만평은 계획 총면적의 10분의1로 이 단지에는 현재까지 64개기업이 입주, 본격적인 생산활동에 들어갔다. 선진외국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87∼90년에는 기술부문에서 기어코 돌파구를 마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1백m 경주에만 전력질주 해왔던 한국이 기술개발을 통해 대만과 마라톤 경주를 벌이는 판국이 되었는데 문제는 누가 어느만큼 힘의 분배를 잘하느냐에 달려있다고 그는 말했다. 말하자면 연구개발과 시설투자확대·기술인력 육성이 마라톤 경주에서의 승자를 결정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원보벽 대외무역발전협 부비서장은『무엇보다 빠른시간에 기술을 한단계 더 높이는것이 필요하다. 치열한 가격경쟁도 불가피하며 결국은 난립된 중소기업의 도산도 감수해야 될것이다. 걱정거리란 지금 큰기업들이 연구개발투자에 선뜻 나서려 하지않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독자적으로 한국경제를 조사해왔다는 강송목 천국무역그룹사장은『대만의 국민저축률이 30%를 넘어서고 있는데 기술투자를 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어느정도 빚을 지더라도 생산부문 투자를 확대하도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10월말 현재 대만의 외환보유고는 한국의 2배를 넘는 1백60억달러, 외채는 한국의 5분의1에도 못미치는 82억달러 수준이다. 81년에 48억달러였던 대만외채가 최근에 늘어난 것은 원자력발전소 건설등에 따른 값싼 차관도입 때문이었다.
첨단산업에 대한 대규모투자에 비판적인 견해도 없는건 아니다. 장천우 공상협진회(한국의 상공회의소와 같은 경제단체) 부비서장은『첨단산업이라고 하더라도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돌아설때는 일정수준의 투자회수율을 기대하기는 어려울것』이라고했다.
대만의 화지·국선·무사·연화등 큰 전자회사들은 한국의 대기업들이 VLSI(초대규모 집적회로)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세계반도체시장에서 판매영역을 넓혀가는데 아연실색, 업계가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고 관계자들은 밝혔다.
국선이란 큰 전자회사는 현재 64KD램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는데 오는 86년에야 본격적인 생산이 가능할정도로 한국에 뒤져있다.
대만의 4대 가전사들은 앞으로 4년동안 그들의 총시설 투자액을 1억7천6백만달러로 잡고있는데 이는 한국의 삼성전자 한회사 투자액의 절반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또 현대전자가 1년반만에 덩치 큰 공장을 건실한 것을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있다.
호정화대만공업연구소 전자연구소장은 고급기술인력 부족이 대만경제발전의 큰 장애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 유학하고있는 대만학생수는 한국의 수십배를 넘어서고 있으며 특히 기술부문의 인재가 적지않다. 문제는 이중 80%이상이 귀국을 희망하지 않고있다는데 있다.
신죽과학공업단지에는 미국등 선진국 기업들의 합작진출이 적지않으나 일본기업은 오직 1개사가 있을 뿐이다. 대만측은 일본이 인식부족으로 기술이전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일본측은 대만의 싼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경영분리가 돼있지않고 규모의 경제가 갖추어 있지않아 기대하는만큼 돈을 벌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내세워 대만진출을 극력 꺼려하고 있다.
황태양 정보산업연구기획센터 주임은『일본에 기술이전을 적극 요청했지만 소식이 없다. 하는수 없어 일본보다 기술수준이 낮은 미국의 한회사로부터 컴퓨터관계 기술도입을 서두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만은 3만자에 이르는 한자를 퍼스널컴퓨터에 넣어 사용할 정도로 소프트웨어부문은 한국을 훨씬 앞서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미래에의 도전에 적응하라』는 장총통의 정책의지에 적지않은 영향을 받은것이다.
지금 대만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엄청난 투자를 해야하는 첨단기술산업분야에서 한단계 앞선 국가와 시장경쟁을 어떻게 치러나가느냐가 최대 난제다.【대북=최철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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