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법안 민주당이 퇴짜 … 오바마 ‘친정발 레임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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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권 업적으로 추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연내 타결이 위기를 맞았다. 미국 하원은 12일(현지시간) TPP 협상에 필수적인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TPA 법안과 연계된 무역조정지원제도(TAA) 안건은 찬성 126표 대 반대 302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부결시켰다. TAA는 TPP로 인해 피해를 입는 근로자들에 대한 실업 보험을 늘리고 직업 훈련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TPA는 TAA가 처리되지 않으면 효력이 없도록 두 안건을 연계시켰기 때문에 TAA부결로 TPA 처리가 무의미하게 됐다.

 신속협상권으로도 불리는 TPA가 TPP 체결에 필수적인 이유는 미국 정부가 TPA를 갖게 되면 미국 의회는 나중에 정부의 협상 결과를 수정할 수 없고 찬반 여부만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13일 “미국·일본 등 TPP에 참여하는 12개국은 주요 현안 협상을 TPA가 처리된 이후로 미뤄 현재 협상이 잠정 중단된 상태나 다름없다”며 “당초 계획과 달리 TPA가 처리되지 않으면 연내 TPP 타결은 난망하다”고 말했다. 그는 “TPA를 부여받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나중에 미국 의회의 요구로 재협상을 해야 했다”며 “TPA가 없으면 오바마 정부가 TPP 협상을 타결해도 미국 의회가 관심 분야마다 재협상을 요구하며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하원은 오는 16일 TAA 안건의 재처리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복수의 외교 소식통들은 “반대표가 너무 많아 현재로선 처리될 가능성이 적어 이날 재처리를 시도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임기를 18개월여 앞둔 오바마 대통령에 치명상을 입히며 공개 레임덕 사태를 만든 주역은 여당인 민주당이다. TPP는 오바마 대통령이 야심차게 제시한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축이다. TPP가 없으면 아·태 지역의 동맹·우방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블럭으로 묶어 놓겠다는 ‘오바마 구상’은 절름발이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런데도 12일 TAA 안건 표결 때 민주당의 찬성표는 40표에 불과했고 반대는 144표나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표결을 하루 앞두고 의회의 연례 야구경기 행사장을 깜짝 방문하며 몸을 낮췄고, 표결 당일엔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처리를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간 오바마 대통령의 ‘방패’를 자임했던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반대 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 지지층인 도시 근로자 계층과 노조가 자유무역협정으로 수입 장벽을 낮추는 데 대해 강경 반발한 게 여당 의원들이 반대한 배경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FTA 등 미국이 체결했던 자유무역협정이 다른 나라의 일자리만 늘려줬다는 정서적 불만도 당내 기류에 영향을 미쳤다.

 일각에선 그간 누적됐던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의 소통 부재가 이번에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해석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어려움은 공화·민주 두 당 모두를 화나게 했던 대통령의 의회 거리두기를 반영한다”는 정치 분석을 인용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키스 엘리슨 민주당 하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은 ‘여러분이 내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하는 식”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대통령을 믿으니 대통령이 뭘 하든 괜찮다’고 말하라고 시사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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