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들 세상] 나도 기자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매주 전국에서 일어난 소중 독자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우리들 세상’에 소개됩니다. 소중 카페(www.소년중앙.com) ‘나도 기자다’ 게시판에 자유로운 주제로 글을 올려주세요. 예비 작가의 창작 소설도 모집합니다. ‘나도 작가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선별해 소중 지면에 싣습니다. 학생기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친구나 부모님 등에게 전하는 편지도 e메일(sojoong@joongang.co.kr)로 보내주세요.

글·사진=오혜성(서울 신기초 5) 학생기자

6·25 휴전 후에도 남북으로 나뉘어 싸워야 했던 빨치산의 비극

빨치산은 지리산의 암반굴을 이용해 아지트를 만들기도 했다.

지리산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아름답고 웅장하게 보이는 이 산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과 함께 지리산을 찾아 ‘빨치산 토벌 전시관’을 방문한 덕분이다. 나는 ‘빨치산’이란 말을 여기서 처음 접했다. 단어 자체가 자극적이기도 하고 어떤 사연이 있길래 전시관까지 세워졌는지 궁금해 취재를 하게 됐다.

빨치산은 정규부대에 속하지 않은 무장 전사 ‘파르티잔(Partisan)’과 같은 말이다. ‘당원·동지·당파’를 뜻하는 프랑스어 ‘파르티(Parti)’에서 비롯된 단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남한에서 유격전을 수행한 북한 부대를 빨치산이라고 부른다. 빨치산은 휴전 후에도 지리산이나 덕유산에 숨어 게릴라전 형태로 싸움을 이어갔다. 게릴라전은 유격전의 다른 말로, 적의 배후나 측면을 소규모 유격대가 기습·교란·파괴하는 전투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이뤄진 우리 군의 토벌작전에 의해 1963년 11월 12일 빨치산은 최후를 맞았다.

전시관에 들어가자 빨치산의 생활상을 재현한 공간이 나왔다. 빨치산은 다양한 형태로 은신처를 만들었다. 산속에서 추운 겨울을 나고 토벌대로부터 숨기 위해서다. ‘아지트’라 불린 은신처는 순두류·법계사·칼바위·소막골·조개골 등 지리산 곳곳에 위치했다. 순두류 아지트는 가장 많은 빨치산이 살던 곳이었고, 법계사 아지트는 지휘본부가 주둔하기에 적합했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토벌군을 경계하기 쉬운 위치에 세워졌던 칼바위 아지트는 바위 틈새를 이용해 곳곳에 숨기 좋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소막골 아지트는 낙동강 전투 이후 후퇴하던 북한군 잔당들과 빨치산이 지리산 동부지역에 최초로 들어와 주둔하던 곳이라고 한다. 또 조개골은 빨치산 최후의 아지트로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쉬운 지형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한 아지트 모형들을 보니 빨치산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벌하게 처절하게 숨어 지냈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빨치산은 동굴이나 바위 밑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곳곳에 감시병을 둬 연락하며 밤에 주로 활동했다. 인근 민가로 내려가 물자를 약탈해 생계를 유지했는데, 마을 사람들을 협박하거나 포섭해 동료로 만들려고 했다는 설명에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량이 5일치 밖에 안 남았을 때면 경찰이 주둔한 지역까지 내려와 물자를 약탈했다. 식량이 너무 많아 움직이기 어려울 땐 주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눠주기도 했다니 정말 치밀하다.

전시관 한쪽에는 빨치산이 사용했던 물품들이 놓여 있었다. 무기를 수리하거나 폭탄을 제조했던 철공장에서 만든 물품, 재봉틀을 사용해 지은 옷 등이다. 출판소까지 만들어 신문을 발행하고 인쇄물을 배포하며 선전 활동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과 힘든 생활 때문에 반항자가 종종 생겼다고 한다. 조직에 반항을 하거나 도망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빨치산 간부들은 부하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엄격한 사상 교육을 할 정도였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1963년 빨치산이 전부 토벌될 때까지 지리산 주민들은 끊임없이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같은 민족끼리 같은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6·25 전쟁도 비극이었는데, 빨치산 사태 또한 서로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줬는지 이번 취재를 통해 절실히 알게 됐다.

변정윤(서울 배화여중 2) 독자

학교에서 만든 과학 수행과제로 발명품경진대회 도전해 볼까

요즘은 상급학교를 진학할 때 교외 대회를 기록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교외 대회를 나가는 것보다 교내 대회를 더 선호한다. 그러나 교외든 교내든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를 소개하려고 한다.

지난 5월 20일 서울특별시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결과가 발표됐다. 결과는 학생들의 학교로 통보됐다. 각 교육청대회를 통과한 160명의 학생 중 특상(1등급)을 수상한 25명의 학생들은 전국대회에 진출할 수 있다.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교내 대회를 통과해야 한다. 교내 대회는 특별한 대회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중등부의 경우는 1학기 과학 수행과제로 나오기도 한다. 학생들이 제출한 수행과제 중 우수한 작품과 작품요약서를 학교에서 해당교육청에 출품하면 자동으로 교육청 학생발명품대회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고등부의 경우는 서울특별시 과학전시관에서 하는 예선경연을 통해 본선에 나갈 수 있다. 초·중등부는 교육청에서 대면심사 없이 심사기준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된다.

교육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작품은 서울특별시 과학전시관에서 열리는 서울시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 나갈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완성도 있게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작품설명서와 학생용 탐구일지 혹은 포트폴리오, 그리고 게시용 설명서(B1사이즈)를 준비해야 한다. 작품설명서는 사전에 e메일로 보내야 하고 대면심사 당일에는 작품과 게시용 설명서, 포트폴리오 등을 가지고 간다.

서울특별시 과학전시관에서는 학생들의 발명품을 설명한 게시물이 10월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소년중앙 페이스북
▶소년중앙 지면 보기
▶소년중앙 구독 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