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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면세점 누구 품에?] 재계 오너들 직접 나서 피말리는 경쟁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롯데·신세계·호텔신라 등 대기업 7곳 출사표 … 이부진-정몽규 연합전선 변수로

별들의 전쟁. 이번 서울 시내 면세점 대전(大戰)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대기업에 할당된 2장의 신규 면세점 사업권을 둘러싸고 별들이 모여들었다. 면면이 화려하다. 호텔신라·롯데면세점·신세계그룹·현대백화점·SK네트웍스·한화갤러리아·이랜드그룹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7곳이 5월 28일 현재 ‘황금알을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거위’를 가져가기 위해 참전을 선언했다. 오너들도 전면에 나섰다. 그만큼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서울에서 면세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오너들에게 있어 절대 놓칠 수 없는 확실한 기회로 해석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소식은 한국 재계의 양대 산맥인 삼성가와 범현대가가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을 위해 손을 잡은 일이다. 이는 서울 용산이라는 매력적인 면세점 부지 확보에 나섰던 호텔신라의 공격적인 사업 전략에서 비롯됐다. 정몽규 현대산업 개발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5월 25일 오전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HDC신라면세점 출범식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HDC신라면세점은 두 회사가 지분 절반씩을 공동으로 출자(현대산업개발은 현대아이파크몰의 자본금도 포함)해 만든 합작 법인이다. 앞서 두 회사는 올 4월 12일 합작 법인의 설립을 선언한 바 있다.

“세계 최대 도심형 면세점 만들 것”

이날 출범식에 앞서 이부진 사장은 건물 9층에 있는 정몽규 회장의 집무실을 찾아 20분 정도 환담했다. 재계는 이 사장이 다른 회사를 직접 방문해 출범식을 가진 것 자체를 매우 이례적인 일로 본다. 반드시 신규 면세사업자로 선정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 사장은 출범식에서 “면세점 사업의 (그간 쌓은) 운영 역량과 전문성을 최대한 살리겠다”며 “일본 도쿄의 정보기술(IT)·전자 관광지역인 아키하바라가 중국인 관광객 특수로 부활했듯 용산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 면세사업자와 전략적 상생협력 나선 롯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5월 25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양창훈 HDC신라면세점 공동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다.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은 신규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 사진:HDC신라면세점 제공

대규모 면세점 사업을 벌일 역량을 갖춘 호텔신라, 그리고 부지 제공과 건설·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현대산업개발의 합작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만한 조합이다. HDC신라면세점은 용산에서 DF랜드(Duty Free Land)라는 이름의 세계 최대 규모 도심형 면세점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총 면적만 6만5000㎡로 중국 싼야(三亞) 하이난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 면세점인 CDF몰(7만2000㎡)에 버금가는 크기다. CDF몰이 리조트형 면세점이란 점을 감안하면 도심형 면세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가 된다. 전체 면적 중 면세점이 차지할 공간은 2만7400㎡로 에르메스·샤넬 등 400여 브랜드가 입점할 예정이다. 나머지 공간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2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한류 공연장과 한류 관광 홍보관, 관광식당 등이 들어선다. 대형 버스 400대가 들어설 수 있는 주차공간과 버스 전용 진입로도 만들 계획이다. DF랜드를 인근 용산전자상가 등을 아우르는 종합 관광 허브로 키운다는 것이다.

기존 유통 업계 강자들도 너나할 것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격전지는 서울 강북이다. 호텔신라 외에도 5곳이 강북을 후보지로 내세웠다. 재계 3위 SK그룹과 5위 롯데그룹은 서울 동대문에서 맞붙는다. SK네트웍스와 롯데면세점이 선봉장이다. 국내 면세점 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진두지휘 하에 동대문 피트인을 후보지로 확정하고, 중소 규모 면세사업자인 중원면세점과 함께 지상·지하 총 11개층 규모의 복합 면세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원면세점과의 연합전선 구축은 관세청 심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유통 업계 최강자로 가장 많은 서울 시내 면세점(3곳)을 보유한 롯데로서는 ‘내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뒤로하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모색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롯데는 중원 면세점과 판매 품목이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롯데가 패션·시계·액세서리 등을, 중원면세점은 술·담배·잡화 등을 취급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홍균 롯데면세점 대표는 “중소 면세점과 같은 공간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취지의 복합 면세타운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장을 열어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지금껏 국내 면세산업을 이끌어온 롯데면세점이 복합 면세타운을 통해 다시 한 번 새 지평을 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워커힐면세점을 운영 중인 SK네트웍스는 동대문 케레스타를 후보지로 확정했다. 연합전선을 구축한 호텔신라나 롯데면세점과는 달리 단독 입찰이다. 케레스타 건물은 지하철 동대문역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어 지리적 이점을 갖췄다. 700여대까지 동시 주차가 가능한 공간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네트웍스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사업 범위가 겹치지 않는 면세점을 안정적인 새 먹거리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회사 내에서 면세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SK 계열사임에도 다른 대기업에 비해 사업을 키우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롯데의 유통 맞수인 신세계그룹도 정용진 부회장의 주도 하에 신규 면세점 사업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 부회장으로서는 롯데뿐 아니라 사촌동생인 이부진 사장과도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후보지는 서울 소공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이다. 이곳 전체를 면세점으로 바꾸겠다는 야심찬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에 사업권을 따내면 적진인 롯데면세점 본점을 지척에서 압박하게 된다. 본관을 상품 판매 위주로 운영하고, 최근 인수한 인근의 옛 제일은행 건물을 사후 서비스 공간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별도 법인인 신세계DF를 설립했다. 성영목 신세계DF 대표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 명동과 남대문 일대를 아우르는 탁월한 입지란 점에서 경쟁사보다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차 공간이 경쟁 상대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

재계 10위 한화그룹과 오너인 김승연 회장도 면세점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 계열사인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부터 제주도에서 면세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후보지는 서울 여의도 한화63시티 빌딩이다. 한화 측은 이미 많은 수의 외국인 관광객이 유입되며 활성화된 관광지 위주로 후보지를 정한 경쟁사들과 달리,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새로운 관광 진흥 효과를 이끌어낼 적임자임을 강조한다. 한화63시티에는 도심형 아쿠아리움과 대규모 아트홀, 국내 최초 밀랍인형 전시관인 왁스뮤지엄 등 볼거리가 다양하기 때문에 면세점을 열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거리상 후보지가 경쟁사들에 비해 서울 김포공항, 인천국제공항과 가깝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한화는 시내 면세점 중 유일하게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 공간을 조성하는 등 한화63시티의 강점을 십분 활용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강남에서 승부수

신규 면세점 사업권 확보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재계 오너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유통 업계 3위인 현대백화점그룹도 전쟁에 가세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점을 승부수로 던졌다. 무역센터점 내 2개 층을 리모델링해 강남권 최대 규모의 면세점으로 변모시킨다는 방침이다. 유일하게 강북 대신 강남을 후보지로 택했다는 점에서 경쟁사들과 차별화된다. 현대백화점 측은 무역센터점이 위치한 코엑스 부근을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키우는 데 일조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다른 주자는 이랜드그룹이다. 이랜드는 서울 서교동의 자이갤러리 부지를 후보지로 내세웠다. 사업권을 따내면 이곳을 서울 신촌과 홍대 일대의 상권을 아우르는 관광 명소로 키울 예정이다.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는 것은 약점이다.

관세청은 올 7월 중 서울 시내 신규 면세사업자를 선정(대기업 2곳, 중소·중견기업 1곳)하고, 향후 5년간 이들 기업의 시내 면세점 운영을 허용한다. 관세청은 이번 신규 면세사업자 선정 심사에서 ▶경영 능력 ▶관리 역량 ▶외국인 관광객 유치 활동 ▶중소기업 제품 판매 ▶중소·중견기업, 기타 면세사업자와의 상생협력 노력 정도의 순으로 기업들을 평가한다. 전문가들은 일단 경영 능력과 관리 역량 항목에서 검증된 롯데와 호텔신라가 경쟁 상대보다 한발 앞선 것으로 조심스레 보고 있다. 롯데의 경우 이번에 추가로 사업권을 따내면 서울에서만 4곳의 면세점을 갖게 돼 독과점 논란이 예상되지만, 현 시점에서 그만큼 확실한 면세 사업자로서의 역량을 갖춘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원면세점과의 협력관계 구축으로 합격점을 받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현대산업개발과 손을 잡으며 승부수를 던진 호텔신라도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성준원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신라면세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AEO(세계관세기구의 수출입 안전관리 우수기업 인증)를 보유해 경쟁사보다 우위에 있다”며 “접근성 면에서도 아이파크몰이 있는 용산은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으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몽규 vs 정지선 5촌 대결

물론 신세계와 SK네트웍스, 한화갤러리아, 이랜드, 현대백화점도 경쟁력을 갖춘 사업자로 평가된다. 특히 현대백화점은 중소·중견기업과 탄탄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다크호스로 꼽힌다. 현대백화점이 새로 설립한 현대DF는 모두투어네트워크·서한사·엔타스듀티프리·에스제이듀코·제이앤지코리아 등 다양한 중소기업들이 함께하는 합작 법인이다. 같은 대기업인 현대산업개발과 힘을 합친 호텔신라가 이 부분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돼 대조적이다. 정지선 회장이 5촌인 정몽규 회장과 맞대결을 벌이게 된 것도 관전 포인트다.

글=이창균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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