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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이젠 시스템 정치를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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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1백일을 맞았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대선에서의 득표율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1백일을 즈음한 지지율은 매우 낮게 나타났다. 취임 후 1백일에 앞의 두 대통령이 80%대의 지지를 얻은 데 비해 盧대통령은 50%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盧대통령은 3金정치라고 하는 기존의 정치 시스템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국민경선이 도입되고, 인터넷 매체로 선거운동을 하고, 정당의 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묶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개혁 알맹이를 모르는 국민들

노무현 후보와 선거참모들의 튀는 언행이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지역주의와 보스 중심의 경직된 정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盧대통령의 파격적인 장관 인선, 취재 시스템의 변화, 토론식 문제해결 방식 등은 기존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에 익숙한 국민에게 분명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기존에 잘못된 것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참여정부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1백일 동안 참여정부의 한계는 그동안 바꾼 것이 스타일과 형식에 머물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단순히 문화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1백일 동안의 실험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스템 정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은 다양한 이해집단의 의견을 조정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시스템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국정운영의 비전과 철학이 분명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개혁의 외형은 갖추고 있는지 모르지만 개혁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인수위나 참모들이 노무현 정부의 철학을 정립하는 데에는 소홀히 했다.

시스템으로 국정운영이 추진되려면 이 시스템의 목표나 철학이 확고해야 하는데 이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현실주의와 접목될 때 정책지향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비춰진다.

둘째, 국정운영은 팀 플레이로 이루어진다. 장관들의 튀는 행동이 개성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장관이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투쟁에 앞장서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채택을 놓고 장관이 갈피를 못 잡고,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에 장관들이 각자 고민하는 스타일로는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장관은 국가의 정책결정에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국무위원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무회의에서 정책이 조율되어야 하고, 장관은 관련 정책에 대해 정부의 대표성을 갖고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대통령도 알아서 하라고 했더니 장관들의 개혁적인 성향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변명해서는 안된다.

청와대 참모들과 장관들 사이에 분명한 정책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책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정책은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된다.

셋째, 시스템 정치에서는 철저한 사전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견하지 못한 환경적 변수에 탓을 돌려서는 안 된다. 사전 시뮬레이션이 철저하지 않으면 정책은 집행단계에서 언제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

발생할 가능성이 제일 작은 환경적 요인까지 고려하여 정책대안들을 검토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실패하면 재수할 수 있지만 국정운영은 리플레이가 없기 때문이다.

*** 정책 집행 시뮬레이션 거쳐야

대통령직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장관이나 참모들도 정책운영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배신하고 비난하는 집단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스타일의 개혁은 단기간 멋있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국정운영에 확고한 철학과 철저한 사전 정책검증이 없으면 정권에 대한 장기적인 평가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낮은 평가를 받은 1백일은 뒤로 하고 이제부터라도 시스템 정치를 통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보여주길 바란다.

염재호 고려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