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는 초록색, 인도는 밝은 화면에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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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LG전자 TV화질팀 박성진?김상준?박유 연구원(왼쪽부터)이 색감표를 이용해 TV의 화질을 평가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 자연에 가까운 최적의 화질을 구현해 내는 게 이들의 임무다. [사진 LG전자]

“주인공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LG전자 TV화질팀에서 근무하는 박유(41)씨는 가족과 함께 TV를 볼 때마다 지나간 장면에 대해 다시 묻곤한다. 프로그램의 내용보다는 화면의 입체감·잔상 등에 더 신경을 쓰다 보니 수시로 흐름을 놓치기 때문이다. 그는 “대형마트에 가면 항상 전자제품 매장에 들러 주요 TV의 화질을 꼼꼼히 체크한다”며 “거의 직업병 수준이라 아내가 함께 장을 보러가길 싫어할 정도”라고 웃었다.

 LG전자 TV의 화질을 책임지는 젊은 연구원 3인방이 있다. TV화질팀의 박유·박성진(38) 책임연구원과 김상준(37) 선임연구원. TV에 장착되는 디스플레이 패널과 모듈 등을 제어해 최적의 화질을 구현해 내는 게 이들의 임무다. 현재 대부분의 LG TV 모델은 이들이 밤을 새며 각종 테스트를 진행하고, 미세한 색 표현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이들이 꼽는 TV 기술의 핵심은 단연 ‘화질’이다. 예컨대 스마트폰을 살 때에는 소프트웨어부터 화면·메모리·카메라 등 다양한 부분을 체크한다. 하지만 TV는 화질 하나가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 연구원은 “화질은 수치·데이터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감성을 맞추는 문제”라며 “트렌드는 물론 국가·민족 같은 변수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축구를 좋아하는 남미 지역에선 초록색이 두드러지게 화질을 조율하고, TV를 야외에서 공동으로 보는 인도에는 밝기를 강조하는 게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해당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나온 결과를 반영했다.

 박성진 연구원은 “기술 발전으로 훨씬 세밀한 색상 표현이 가능해져 이젠 궁극의 화질인 자연색을 표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몇 년 뒤면 상상을 뛰어넘는 사실감·현장감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이 요즘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중국의 약진이다. 아직 한국이 세계 TV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중국이 빠르게 쫓아오면서 시장은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박성진 연구원은 “3~4년 전만 해도 한국을 따라오려면 멀었구나 싶었지만 지금은 화질 수준이 턱밑까지 왔다”며 “다행히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올레드(OLED) TV는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4~5년 정도 나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 시장을 끌고 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평면TV가 브라운관TV를 대체했듯 OLED가 지금의 액정표시장치(LCD)TV를 대신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스스로 빛을 내는 OLED는 기존 디스플레이와 달리 백라이트가 필요하지 않다. 덕분에 전력 효율과 명암비·색재현율·응답속도가 뛰어나고, TV를 더 얇게 만들 수 있다. 현재 OLED TV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LG전자만이 양산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TV에선 검은색을 얼마만큼 잘 구현하느냐가 좋은 화질을 결정한다”며 “OLED는 검은색 화면과 TV전원을 끈 것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블랙’을 표현해 낸다”고 자신했다.

 문제는 시장 규모다. LG전자 홀로 OLED 마케팅에 나서다보니, 전체 파이를 키우는 데 한계를 겪고 있는 것이다. 박유 연구원은 “소비자 시장에서 OLED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특히 중국 TV업체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OLED 패널을 채택할 계획이어서 시장은 꾸준히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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