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 칼럼] 5·31 교육개혁에 던지는 돌직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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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자와 교육 관료들은 한국 교육의 담론으로 '5·31 교육개혁'을 꼽는다. 20년 전인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정부가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내놓은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을 말한다. 그 안이 지난 20년간 한국 교육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4회에 걸쳐 발표된 안은 23개 분야 120여 과제로 짜여졌다. '좋다는 약'은 다 들어 있었다. 자율화·다양화·특성화, 수요자 중심 교육, 열린 교육, 세계화·정보화 등이 그랬다. 구체적으론 대학 입시·정원·설립 자율화 등이 제시됐다. 교육 대통령을 자처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딸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고 국민의 부담을 없애자"며 다그쳤다.

5·31 개혁안은 이념·철학이 다른 보수·진보 정권을 넘나들면서도 대체로 그 틀이 유지됐다. 역대 정부가 애초의 준거를 흔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평가받을 일이다. 성과도 적지 않았다. 95년 당시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33명으로 유네스코 조사 대상국 194개 국 중 120위였다. 지금은 15명대로 선진국 수준이다. 당시 51.4%였던 대학 진학률은 80%를 넘나들며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PISA) 평가에서도 최상위권에 올랐다. 지난달 인천에서 열린 '2015세계교육포럼(WEF)에서도 교육부는 이런 성적표를 자화자찬했다. 각국의 부러움도 샀다. 경제성장 '뒷바람' 덕도 봤지만 외형적으론 괄목상대다.

그렇다면 화려한 겉만큼 속도 튼실할까. 폄훼할 뜻은 없지만 여러 의문이 머리를 무겁게 한다. 무엇보다 5·31 개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교육 마피아들’은 그간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계 요직을 독차지했다. 각급 학교에 '감 놔라 배 놔라' 호령하는 교육부의 힘자랑도 여전하다. 국민의 교육 고통은 더 커졌는데 교육 마피아들만 잔치를 벌인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왜 그럴까.

첫째, 사교육비부터 뜯어보자. 95년 1조1866억원에서 2014년엔 18조2279억원으로 20년 사이 15배 이상으로 불었다. 당시 1만1430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로 2.5배 정도로 늘어난 점에 견줘보면 작금의 사교육 고통은 헤아릴 수가 없다. 이게 교육 마피아들이 호언한 결과인가.

둘째, 중등교육은 양극화로 치달았다. 특목고·자사고·마이스터고 등 다양화는 진전됐지만 일반고는 중병에 걸렸다. 수월성과 평준화 교육의 동반 업그레이드가 멈추고 수직적 서열화만 심화됐다. 특목고→자사고→자공고(자율형 공립고)→일반고 순의 서열 말이다. 일반고에 교과과정 편성·운영 자율권을 확대하고 우수교사를 배치해야 한다.

셋째, 대학 부실화는 교육 마피아와 대학의 짝짜꿍이다. 95년 당시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설립을 인가하는 대학 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하면서 사후 관리를 방기했다. 부실대학이 득실거렸고, 결국 스스로 목을 쳐야 할 처지가 됐다. 학령인구 감소를 외면한 교육 마피아와 책무성을 망각한 대학이 공모한 참극이다. 입시 자율화도 그렇다. 다 풀어줄 경우 대학을 믿을 수 있는가. 지금도 난수표 같은데 얼마나 더 비비 꼴지….

'교육 두드러기'를 초래한 원초적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중앙집권적 통제와 간섭의 단맛에 취해 현장의 자생력을 앗아 버렸다. 중앙정부가 완력으로 윽박하며 현장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났다. 교육부가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면 정책기획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런 다음 각급 학교·교육청·자치단체에 국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도록 그 기능을 바꿔야 한다. '통제의 꿀잠'에서 깨어나라는 얘기다. 그래야 교육 현장에 실용성·적용성이 탄탄해지고 자생력이 복원된다. 물론 현장의 책무성은 필수다.

결론적으로 5·31 교육개혁은 교육 마피아들의 잔치로 끝났다. 향후의 개혁은 민간 중심으로, 또 독립적인 기구 증심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게 자율화·분권화·글로벌화로 가는 선진 교육개혁의 흐름이다.

양영유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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