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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8을 위한 긴급동의<이것부터 고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나라의 대중위생 척도를 알려면 공중변소를 보라고 한다.
우리네 공중변소는 마음놓고 발 디딜 곳이 없다.
급히 볼일을 보러 화장실을 찾으면 악취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코를 막아야하고 막상 문을 열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불결하다.
공원· 터미널·고속도로휴게소·지하철·철도역 등 공공시설에 들어선 대부분의 화장실에 오물이 넘치고 악취가 풍기는가 하면 각종 시설물이 고장나거나 도난 당한 채 방치되는 등 사용·관리 양쪽에서 문제를 낳고있다.
◇시설실태=영동고속도로 한계령휴게소는 피서· 단풍 철이면 하루 최고 3만여 명의 국내의 관광객이 지나는 길목. 이곳의 화장실은 겨우 26칸 (남자10· 여자16개) 뿐.
게다가 물이 귀한 고지대(해발1천3m)여서 수세시설은 이름뿐 오물이 화장실에 넘치고있다.
일요일인 4일 설악 단풍 객을 실은 관광버스 8대가 동시정차를 하면서 4백여 명의 승객들이 화장실로 모였다.
여자화장실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여자승객은 욕지기를 참으려는 듯 손으로 입을 막고 후닥닥 뛰어나갔다.
앞서 사용한 사람들의 오물이 바닥에까지 넘쳐 더 이상 사용할 엄두가 안 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 비하면 이곳의 화장실은 소변보는 곳조차 악취로 코를 싸쥘 정도다.
『50리나 떨어진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서 물탱크 차로 하루 20드럼을 길어 쓰지만 이용자가 몰릴 때는 금방 물통에 물이 떨어지지요.』
한계령휴게소 관리 책임자 정대균씨는 수세시설을 제대로 쓰려면 하루 50드럼의 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하수를 파거나 물탱크 저장시설을 늘려야 할 것 아니냐는 물음엔 『개발제한 지역이라 규제가 많아 엄두를 못 낸다.』고 대답한다.
곧이어 6대의 버스대열이 도착하고 관광객을 내려놓자 발 디딜 틈 없는 화장실을 피해 남자손님들은 휴게소 건물 뒤 후미진 곳에서 줄줄이 서 소변을 본다.
그 중엔 화장실 줄서기를 포기한 용변이 급한 일본인 관광객들도 섞여있다.
그들은 민망스러운 듯 서로 쳐다보며 『지독하군!』하고는 곧바로 버스로 뛰어오른다.
외국인 보기에 낮 뜨거운 장면이다.
『이게 어디 화장실입니까, 시궁창이지-. 악취는 골을 때리지요, 화장실 바닥에 오물은 가득 찼지요. 코를 쥐고 일어서자 고장난 물통에서. 하수까지, 쏟아지니 역겹고 부그러워 혼났읍니다.』
8도기쟁탈 어린이 야구대회가 열린 지난달 30일 하오 선수로 출전한 아들 (15·H중2년) 을 따라 장충공원에 갔던 학부모 이은경씨 (41·여·서울 한강로3가) 는 시궁창보다 더 역겨운 시립공원 화장실에 넌더리를 친다.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부경선 하차장 앞 화장실 앞에 볼일이 급한 승객 10여명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줄지어 섰다.
『하루 5만여 명의 승객이 몰리는 터미널 하차장에 칸막이 화장실이 3개밖에 없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차례를 기다리다 못한 승객들이 근처 다방이나 음식점에서 화장실 사용을 구걸(?)하는 딱한 실정입니다.』
대구에서 회사 일로 서울 출장길이 잦다는 송열인씨(30·회사원· 대구시 범어동) 는 칸막이 화장실 5개중 한곳은 문짝이 아예 달아나 버렸고 또 다른 한곳에는 청소용구가 가득 차 사용할 수 없어 화장실 이용이 고통스럽다고 불평했다.
지난 4월 개통한 지하철2 호선 잠실 종합운동장 역의 양변기 뚜껑이 망가졌고 재떨이는 없어졌으며 벽에는 외설 낙서 투성이.
2개뿐인 화장실 가운데 한곳은 이용객이 적다는 이유로 아예 문을 닫았다.
◇청소·관리= 『온종일 지켜보다 한눈 팔면 신문휴지 뭉치가 변기 통에 처박히지유. 하루 수십 차례 치워도 말끔해 지질 않으니 신이 나지 않아유.』
서울 동마장 시외버스 터미널 1층 화장실 청소부 김복녀씨(55·여)는 자기 집 화장실이라면 함부로 사용하겠느냐 며 얌체이용객들의 무절제에 혀를 찼다.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충북옥천군동이면) 관리과장 함영도씨(35) 는 『여자화장실 12칸 중 10칸의 휴지가 걸어놓기 바쁘게 없어진다』 면서 휴지꽂이· 소형 재떨이까지 치마폭에 감추어 가는 손님이 있다고 개탄.
◇사용자= 『걸핏하면 좌변기뚜껑이 없어져 아예 문을 걸어 닫았지요.』
호남· 영동고속도로 전용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측은 잦은 도난 때문에 좌변기가 시설된 외국인 전용화장실 2곳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외국인의 요청이 있을 때만 문을 열어주고 있다면서 쑥스러운 표정.
경부선 쪽 화장실을 관리하는 서진기업 전무 홍규철씨(47)는 『양변기 위에 양발을 올려놓고 일을 보는가 하면 휴지가 있는데도 신문지를 사용하는 손님 때문에 골치를 앓고있다.』 면서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하는 시민 의식이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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