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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묻고 정몽준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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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경빈 기자 중앙일보 부장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명예부회장은 3일 FIFA 회장 출마에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1국1표 선거는 불합리하지만 월드컵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세계 축구의 컨트롤타워다. 전 세계 209개 가맹국을 관리하며 축구의 가치를 높이고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게 목표다. 85년 전 우루과이에서 13개 나라가 모여 치른 조촐한 축구 대회였던 월드컵을 전 세계 200여 개국이 참여하고 연인원 450억 명이 시청하는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로 키워낸 게 FIFA다. 최근 불거진 FIFA의 부패 스캔들은 그래서 더 실망스럽다. 현금 보유고만 15억 달러(약 1조6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집행부가 장기간 조직적인 비리를 저질러 온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과 스위스 사법당국이 공조한 수사 과정에서 전·현직 FIFA 고위 간부를 포함해 14명이 기소됐다. 수사기관의 칼끝이 점점 다가오자 결국 제프 블라터 회장도 백기를 들었다. 지난달 30일 FIFA 총회 회장 선거에서 5선에 성공한 지 나흘 만인 3일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이제 FIFA는 반부패 전쟁과 더불어 새 회장 체제 아래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오랜 기간 블라터의 라이벌로 활동했고, FIFA 집행부의 비리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던 정몽준(64) FIFA 명예부회장을 만나 FIFA의 과제와 지향점을 물었다.

김영희=(블라터 회장 사퇴로) 중요한 시점에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차기 FIFA 회장 도전 선언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국제무대 재도전이냐, 정계 복귀냐의 갈림길에 서 계신 것 아닌가요.

정몽준=그런가요(웃음). 블라터 회장이 사퇴할 걸 미리 알고 저를 초대하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블라터 회장이 사임을 발표했지만, 진정성은 부족해 보입니다. 사퇴의 변을 통해 그간 FIFA가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걸 집행위원회의 탓으로 돌리더군요. ‘내가 더 이상 회장 선거에 나오지 않으니 이제는 마음껏 개혁을 하겠다’고 이야기하던데, FIFA에서 계속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후계자로 만들겠다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김=블라터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이 예상했던 결과인지 궁금하네요. 사법당국의 수사와 관련해 선제적 차원으로 물러난 것 아닐까요.

 정=블라터 회장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 미국과 스위스를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조사를 받고 있고, 앞으로도 조사는 계속될 테니까요. 누가 추가로 처벌을 받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죠. 근본적으로 FIFA는 스포츠맨십을 지향하는 체육단체 아닙니까. 그런데 불명예스러운 말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이라면 관련자들이 진작에 물러났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FIFA에서 17년간 부회장으로 활동하셨지요. 이렇게까지 부패한 집단이었나요.

 정=부회장을 오래 했던 사람으로서 저도 책임감을 느낍니다. 블라터 회장이 사무총장을 거쳐 회장까지 거의 40년 가까이 FIFA를 이끌었는데 늘 가까운 사람, 의견이 같은 사람들만 주변에 뒀어요. 저를 포함해 생각이 다른 사람은 철저히 배척했습니다.

 김=FIFA의 문제는 주로 금전적인 부분인가요.

 정=체육단체로 가장 유명한 조직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FIFA인데, FIFA는 축구 한 종목만 다루고 있어도 IOC보다 재정적으로 훨씬 큰 조직입니다. 올림픽과 견줘 월드컵의 TV 시청자 수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요. 그만큼 영향력이 큰 단체고 돈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했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독립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시스템이 문제였습니다.

인터뷰 중인 김영희 대기자(왼쪽)와 정몽준씨.

 김=FIFA 회장 선거를 앞두고 블라터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하셨죠.

 정=FIFA의 부패는 구조적이고 뿌리가 깊습니다. 예를 하나 들지요. 2006년에 FIFA가 신용카드 부문 스폰서십을 선정할 때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가 경쟁했어요. 당시 FIFA는 기존 스폰서십 업체인 마스터카드를 따돌리고 비자카드와 부당하게 협력했다가 송사에 휘말렸습니다. 그 일로 FIFA가 9200만 달러(약 1020억원)의 벌금을 냈죠. 이 정도 사건이라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닙니까. 당시 마케팅 담당자가 사건 직후 퇴사했는데, 얼마 뒤 슬그머니 FIFA로 복귀하더니 사무총장이 되더군요. 그 사람이 현재까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제롬 발크입니다.

 김=다시 한 번 묻습니다. 회장직에 도전할 의지가 있나요.

 정=제가 도전해서 그 분야에 도움이 된다면 (출마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출마 여부는 FIFA 관련 인사들과 직접 만나서 상의한 뒤 최종적으로 결정할까 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을 포함한 여러 대륙 인사들과 만나보고 거취를 정하겠습니다.

 김=국내 정치와 겸할 가능성도 있을까요.

 정=가능이야 하겠지만, 너무 바빠지지 않겠습니까.

 김=만약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차기 회장으로 누가 유력하다고 보십니까.

 정=이 자리에서 이름을 거론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블라터 회장의 크로니즘(cronysm·정실인사)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사람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새 회장 체제에서 세계 축구가 어떻게 변하리라고 보십니까. 일각에서는 블라터 회장이 자신의 대리인을 새 회장으로 앉혀 상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정=그게 최악의 시나리오일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시아의 저개발 국가들이 블라터 회장의 지원금을 바라고 표를 줄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FIFA가 지금보다 투명한 방향으로 개혁을 이루면 지금보다도 더 많은 나라에 더 큰 혜택이 돌아갈 거라 생각합니다.

 김=수사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까요.

 정=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각 나라에 (비리) 관련자들이 흩어져 있으니까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법무장관과 FBI 국장, 국세청장이 같은 날 ‘비리 근절’을 다짐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특정한 범죄 사실에 대해 중요한 세 단체의 책임자가 함께 성명을 발표하는 일은 미국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 들었습니다. 그만큼 FIFA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의미겠지요.

 김=지난해 12월 1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2018년·2022년 월드컵 개최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잉글랜드가 서로를 밀어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정몽준이 배반했다”고 보도했었죠.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사실입니까.

 정=사실무근입니다. 2018년 개최지 선정에 도전한 나라가 잉글랜드와 스페인, 벨기에-네덜란드(공동 개최), 러시아였는데, 1차 투표에서 잉글랜드가 단 한 표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잉글랜드 출신 집행위원이 있었으니 그분만 잉글랜드에 투표한 셈이죠. 축구 종주국이고,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프리미어리그도 보유한 나라인데 월드컵 유치에 실패했으니 자존심이 상했을 테고, 뭔가 핑계를 만들고 싶었겠죠. 하지만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영국은 미국과 친한데, 그런 나라를 두고 우리나라와 거래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김=정 명예부회장께서 2011년 FIFA 부회장 선거에 패배한 뒤 한국의 스포츠 외교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는 여자월드컵 유치에 실패했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FIFA 집행위원 선거에서 고배를 들었지요.

 정=제가 FIFA 부회장을 계속했더라도 여자월드컵 유치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나라와 경쟁한 곳이 프랑스였는데, 유럽이나 미국 입장에서 가까운 프랑스에서 대회를 하는 것과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에서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거든요. 그래서 2002년 월드컵 유치가 더 뿌듯한 성과인 것이죠.

 김=다시 FIFA 이야기로 돌아가죠. 부패와 여러 가지 비리 문제가 불거져 블라터 회장이 물러난 마당에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정=날씨가 더운 부분을 걱정하는 분이 많습니다만 카타르에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고 일단 결정한 사항이니 가급적 잘되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봐 줘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월드컵 개최지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김=FIFA 회장 선거는 209개 가맹국 모두가 동일하게 한 표씩 행사합니다. 블라터 회장에게 맞서는 유럽은 여전히 FIFA 내에서는 소수파일 뿐이지요. 다음 선거에서 유럽이 반드시 유리하다는 보장도 없을 것 같은데요.

 정=돈이 많고 힘이 있어도 결국 모두가 한 표씩입니다. 똑같은 기준이 월드컵 대회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월드컵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누가 되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FIFA는 회장이나 사무총장이 한 번 임명되면 너무 오래 자리를 유지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부패의 싹이 텄다고 생각합니다. 일정 기간 이상으로 장기 집권을 하지 못하게 제도적 보완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김=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습니다. 정계 복귀입니까, FIFA 회장 도전입니까.

 정=요즘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직업이라 부를 만한 일도 없는데 하는 일 없이 바쁘군요. 질문하신 부분은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지나간 길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내일을 내다보려 합니다.

정몽준은 …

1993년부터 2009년까지 16년간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일했다. 4강 신화를 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이끌었고 축구협회 등록 선수와 예산도 크게 늘렸다. 94년 FIFA 부회장에 당선돼 17년간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 2022년 월드컵 유치에 나섰지만 카타르에 밀렸고 2011년엔 FIFA 부회장 5선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현재 FIFA 명예부회장으로 있으나 축구계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는 않고 있다. 이번 FIFA 회장 선거를 불과 6시간 앞둔 지난달 29일 제프 블라터를 맹비난했다. 88년 울산 동구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7선에 성공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정리=송지훈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