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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의 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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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화를 영어로는 「크리샌더멈」이라고 한다. 그리스어의 크리소스(황금)와 안데몬(화)의 합성어.「황금의 꽃」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선 수객, 은군자, 은일화라고도 한다. 선비를 연상한 이름같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보면 국화를 가우에 비유했다. 매화는 청우요, 하화는 정우, 국화는 「좋은 친구」인 가우라는 것이다. 친구로는 청우나 정우도좋지만 가우쪽이 스스럼이 덜해 마음이 끌린다.
중국사람들이 사군자의 하나로 국화를 꼽은 이유도 아마 그런 은근한 정감때문이 아닐까.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엔 국화를 중국의 꽃, 일본의 꽃으로 소개되어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의 문헌을보면 그것이 반드시 옳은 정설은 아니다.
송나라(서기960∼1126년)시절 국화재배 명가인 유몽과 범성대의 국보엔 신라국과 고려국이 한토에 애식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국은 일명 옥매, 육국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18세기 일본에서 간행된 『화한삼재도회』라는 고문헌엔 백제국이 소개되기도 했다. 서기 385년 일본에 청황적백흑의 백제국화가 이식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엔 그전에 국화가 있었다는 기록은 다시 없다.
백제·신라·고려-, 그시절 벌써 왕궁의 어원이 가을이면 국화로 가득 넘쳤으리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고려 어느 귀인의 문감 위에 놓인 청자화분 속의 국화도 향기를 풍기고 있었음직 하다.
시대는 다르지만 조선왕조 시절의 문신 이정보의 시조가 생각난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지내고/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가/아마도 오상고절(오상고절)이 너 뿐인가 하노라.』
국화의 오상고절은 중국대륙에서 발견된 화우을 보면 50만년, 어쩌면 백만년도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물론 요즘의 화려한 국화는 아니고 한낱 들국화에 지나지 않지만, 그 향기는 예나 변함이 없을것 같다.
중국 고사에는 국수얘기가 전한다. 남양(지금의 하남성) 북서쪽에 있는 감곡의 물을 마시고 7백세까지 산사람이 있었다. 그 산골짜기엔 야생국화가 많아 그 국화에서 우러난 자액이 장수를 도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국화를 얹은 꽃전이나 국화를 띄운 국주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베개 속에 마른 국화꽃을 넣어 베고 자면 장수한다는 얘기도 전한다. 생각만해도 국화 향기가 마음 속에 스미는것 같다.
때는 만추. 서울 도심(동방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국화전에 절로 발길을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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