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농부로 … 제2인생 출발 돕는 평생학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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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서울 봉천동 명락사에서 나영봉씨가 석가탄신일 행사를 취재 하고 있다. 나씨가 쓴 기사는 지역 방송국 뉴스를 통해 매주 방송된다. [오종택 기자]

“천태종과 조계종의 연등 행사는 어떤 점이 다릅니까?” “조계종 신도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명락사. 석가탄신일 연등 행사를 준비 중인 사찰 관계자에게 나영봉(56)씨가 질문을 쏟아냈다. 노트엔 나씨가 미리 준비해온 인터뷰 질문들이 빼곡했다.

 기자 수업을 받고 있는 나씨의 직장은 서울메트로 제4전기관리소. 올해로 30년째 근무 중인 베테랑 엔지니어다. 왕년에 ‘문청’(문학청년)이었던 그는 한 지역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할 만큼 글 쓰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2년 전 관악구 평생학습관의 기자학교 모집 광고를 보게 됐다. “평생을 기술자로 살았지만 이젠 글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당장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왜…’ 같은 육하원칙부터 어렵게 다가왔다. 하지만 기자 출신 강사의 1대1 지도를 받고 현장 경험이 쌓이면서 나름의 취재 노하우가 생겼다. 이제 나씨는 평일엔 공구를, 주말엔 취재수첩을 손에 든다. 지난해 2월부터 자신이 작성한 기사가 지역 방송국에 나가면서 어느 정도 규칙적인 수입도 갖게 됐다. 나씨는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뿌듯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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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 퇴직 후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 한 병원의 재무 담당 직원이었던 김영애(48)씨는 올 초 직장을 그만뒀다. 평소 손재주가 많다는 말을 들어온 김씨는 지난달 홍제초등학교 근처에 가구 공방 겸 목공예 교실을 열었다. 지난해부터 서대문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수강한 ‘목공 인테리어 전문 교육과정’이 큰 도움이 됐다. 공방을 차리는 데 모자란 자본금은 함께 수업을 들었던 5명과 힘을 모아 마련할 수 있었다.

 은퇴를 하고도 계속 일을 해야 하는 ‘반퇴(半退) 시대’. 베이비부머 세대의 생존 키워드는 ‘평생교육’이지만 배움을 통해 퇴직 이후를 준비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가 베이비부머 가구주 4101명을 조사한 결과 “평생교육을 받고 싶다”고 답한 사람은 2688명(65.6%). 하지만 3260명(79.5%)이 “평생교육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조미숙 서울시 평생교육과장은 “은퇴를 앞둔 이들 대부분이 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부족한 시간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 17개 자치구가 평생학습관을 운영한다. ‘도시농부’를 위한 도봉구 평생학습관의 친환경 농업강좌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주민을 전문강사로 육성하는 은평구 ‘숨은 고수 교실’은 이미 인기 프로그램로 떠올랐다. 각 자치구가 진행하는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 평생학습포털(sll.seoul.go.kr)이나 자치구 평생학습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은 구청이 효과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우수 사례를 발굴해 서울시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김영철 평생교육진흥원장은 “퇴직 후에도 취업하기 위해선 교육이 선행돼야한다”며 “강남·종로 등 대기업이 몰려있는 지역에 직장인들이 퇴근 후 곧바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거점 교육센터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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