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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대통령 평가는 퇴임 뒤 하기 나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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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저스틴 본
대통령학 전문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어느덧 퇴임 준비에 들어갔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업무 성적을 역대 미 대통령 43명과 비교한다면 몇 등일까?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오바마는 현재 18등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이 순위는 그가 퇴임한 뒤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재직 중의 성과가 중요하지만 퇴임 뒤의 처신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신을 잘하면 재임 시 업적도 재평가되고, 그때의 과오도 회복할 수 있는 경우가 흔하다.

 흥미로운 건 재직 중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힌 이들의 상당수가 퇴임 후의 점수가 낮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임기 중 순직하거나 퇴임 후 몇 년 안에 세상을 떠 이렇다 할 퇴임 뒤의 업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가 이 부류에 든다.

 반면 중도 사임했거나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일수록 퇴임 후 점수는 높은 경우가 많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임기 중 백악관을 떠난 37대 리처드 닉슨이 대표적이다. 그는 고향 캘리포니아에서 10년 넘게 은둔한 뒤 정부 대표로 러시아와 제3세계에서 평화 캠페인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국장(國葬)을 사양하고 고향의 부인 묘 옆에 묻힌 것도 그의 악명을 희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남부 촌놈’ 빌 클린턴에게 발목이 잡혀 재선에 실패한 41대 조지 H W 부시도 퇴임 후 처신에서 고득점을 한 대통령이다. 휴스턴에 정착한 그는 후임자 비판을 삼가며 불우이웃 돕기 같은 자선행사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성공한 퇴임 대통령’ 공식이 나온다. 여생을 공익 활동에 바치되 워싱턴 정치나 돈이 연루된 이슈에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최고의 전직 대통령으로 꼽을 만한 사람은 우선 6대 존 퀸시 애덤스다(39대 지미 카터는 너무 유명한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라 생략한다). 퇴임 뒤 하원의원을 지낸 그는 남부 출신 의원들이 노예제 반대 청원을 막는 ‘함구령’을 통과시키자 8년간 투쟁 끝에 이 악법을 파기시켰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9년 동안이나 연방 대법원장을 지내며 대법원의 선택적 심리권한을 확보하고 250여 건의 명판결을 내린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도 성공한 전직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케이스는 31대 허버트 후버다. 그는 대통령 재직 중에 터졌던 대공황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무능한 대통령의 전형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퇴임 뒤에는 달라졌다. 2년간 후버위원회 의장을 맡아 정부조직 개혁을 완수하는 등 돋보이는 활동으로 반전에 성공한다.

 반면 백악관에서 물러난 뒤 그릇된 처신으로 ‘최악의 전직 대통령’이 돼 버린 이도 적지 않다. 1850년대를 풍미한 3명, 즉 13대 밀러드 필모어, 14대 프랭클린 피어스, 15대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필모어는 당시 미국의 최대 현안이었던 노예제도를 수수방관하고 ‘도망 노예 소환법’을 지지한 탓에 북부의 반발을 사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퇴임 3년 뒤 다시 노예제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한 ‘알지마당(Know-Nothing Party)’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다. 그의 출마로 노예제에 반대하는 공화당 후보 프레몬트 대신 민주당의 뷰캐넌이 당선됐다. 뷰캐넌의 재임 동안 남부와 북부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고, 마침내 남부가 연방에서 탈퇴해 북부와 전쟁을 벌이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역사가들이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는 뷰캐넌의 당선에 필모어가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재임 시 노예제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해 ‘줏대 없는 사람’이란 비아냥을 들은 피어스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퇴임 이후 후배 대통령 링컨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려 스스로를 최악의 대통령 반열에 올려놓는다.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역시 최악의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이다. 그는 재직 중에는 독과점 철폐와 러일전쟁 중재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겨 그 유명한 러시모어산의 대형 조각상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미국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행동을 많이 했다. 자신이 택한 후임자 태프트에게 대항해 191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패배했다. 그러자 ‘큰사슴당’을 창당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공화당을 반 토막 냈다. 이 바람에 민주당 후보인 우드로 윌슨(28대)이 어부지리로 대권을 챙겼다. 테디의 어리석은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월슨이 밉다고 공화당을 돕는 바람에 미국 의회는 여소야대가 됐고, 이는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 좌절로 이어졌다. 전 세계의 리더인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업적만큼이나 퇴임 후 처신에도 신경 써야 훌륭한 대통령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저스틴 본 대통령학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