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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대응 허술, 하루 한 명꼴 발생 … 이번 주가 확산 갈림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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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05면

메르스 감염 환자가 늘면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29일 마스크를 쓴 채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관광객. [뉴시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방역 그물망은 촘촘하지 못했다. 지난 20일 메르스 첫 환자 발생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는 전염력이 약하다”고 발표했다.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과 가족 64명을 자가(自家) 격리하도록 했다. 이 정도면 메르스의 확산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으로 흘러갔다. 추가 감염자가 계속 나온 것은 물론 전파 속도도 예상을 웃돌았다. 최초 발생 열흘 만에 13명의 환자가 연이어 나왔다. 그러자 메르스 확산에 대한 국민의 공포도 커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특정 병원을 가면 안 된다’거나, ‘병문안 가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는 등 괴담이 떠돌고 있다.

구멍 뚫린 메르스 방역 체계

이 같은 공포는 정부가 키운 측면이 있다. 전염력이 약하다는 점만을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초기 대처는 미흡했다. 정부는 지난 29일에야 메르스 방역대책본부를 질병관리본부장 체제에서 차관 중심 조직으로 격상시키고, 밀접 접촉자 관리대상을 127명으로 늘리는 뒷북 대책을 내놓았다. 익명을 원한 전문가는 “정부가 과도한 공포 조장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며 “초기 대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기존엔 환자 한 명이 2~7명에 전파
신종 감염병에 대한 연구는 제한적이다. 메르스도 마찬가지다. 중동에서 시작됐으며 치사율이 40%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잠복기가 14일 정도이고, 발열과 호흡곤란 등이 주요 증세다. 하지만 이 병에 대한 정보는 부족한 실정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1년 전만 해도 메르스는 낙타에서 사람으로만 옮기고, 사람 간 전파는 안 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며 “지난해 후반에 사람 간 전파에 대한 논문도 감염자 한 사람이 0.6~0.8명에게 옮긴다고 했다가 최근엔 2~7명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처음으로 유입된 메르스는 기존 통설마저 바꿔놓았다. 현재 보건당국은 국내에서 발생한 환자가 모두 첫 환자인 A씨(68)로부터 2차 감염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A씨의 전파력은 12명으로 기존 연구 결과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에 대해 서울대 의대 보라매병원 방지환(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잘 이뤄진다”며 “첫 환자에게서 변이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전파력이 더 세진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처는 안이했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사실과 기존 연구에만 매몰돼 여기에 따라 방역 대책을 세웠다. 네 번째 환자인 D씨(46·여)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는 지난 26일 감염이 확인됐다. D씨는 첫 환자인 A씨와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세 번째 환자 C씨(76)의 딸이다. 아버지가 확진을 받은 21일, 보건당국에 자신도 의심스럽다며 검사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체온이 급성호흡기 증상 기준인 38도를 넘지 않았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집으로 돌아간 D씨는 4일 후 고열 증상이 나타났고, 다음날 확진을 받았다. 질병관리본부는 부랴부랴 이날 고열의 기준을 37.5도로 하향 조정했다.

자가 격리 대상이 되는 밀접접촉의 기준(2m)은 제대로 적용되지도 않았다. C씨의 아들이자 D씨의 남동생인 K씨(44·29일 확진)는 16일 아버지 병실을 방문해 4시간가량 머물러 자가 격리 대상이 돼야 한다. 하지만 C씨와 D씨가 역학조사 과정에서 K씨의 방문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보건당국도 가족관계 파악을 소홀히 했다. 결국 K씨는 자가 격리 대상인 64명에 포함되지 않았고, 8일간 직장과 일상생활을 했다. 이후 26일 출장차 중국으로 건너간 뒤 29일 확진 판정을 받고 현지에서 격리 치료 중이다. 보건 당국은 그가 방문한 의료기관의 의료진 10명, 직장 동료 180명, 탑승 항공기 주변 승객 28명 등도 확인 중이다.

3차 감염 나오면 통제 범위 넘었다는 의미
메르스 환자는 얼마나 더 늘어날까. 전문가들은 이번 주가 감염자 확산 여부의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3차 감염환자의 발생 여부다. 중동 지역 여행 중 감염된 첫 환자 A씨가 1차 감염, A씨로 인해 감염된 사람이 2차 감염이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감염이 되면 3차 감염자가 된다. 3차 감염은 사실상 메르스가 방역망을 뚫고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현재 홍콩에는 K씨와 비행기에 동승한 일부 승객이 격리 관찰 중이다. 만약 이들 중 확진자가 나오면 3차 감염이 된다. 이들은 첫 환자인 A씨와의 접점이 전혀 없다.

예상보다 빠른 전파 속도에 미뤄볼 때 3차 감염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환자 중 8명은 A씨의 가족이거나 그를 진료한 의료진,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 등이다. A씨와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같은 병실이 아닌 10m 이상 떨어진 병실에서 감염된 6번째 환자 F씨(71), 9번째 환자 I씨(56), 11번째 환자 J씨(79·여),12번째 환자 L(49·여)씨, 그리고 L씨의 남편인 13번째 환자 M씨 등 5명의 감염 경로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행히 아직까지 3차 감염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다. 병원협회 이왕준 정책실장은 “전 세계적으로 3차 감염에 대한 보고는 없다”며 “우리가 집중하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2차 감염자를 적극 찾아내 치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준욱 메르스중앙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현재까지 발견된 모든 환자가 첫 환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이 있다”며 “환자의 분비물이 아주 근접한 거리가 아니더라도 의료기관에서 소위 감염의 형태로도 전파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자가 더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추세는 확연히 줄어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오명돈(감염내과) 교수는 “중국에 간 남성을 파악하지 못한 것과 검사해 달라는 사람을 놓친 것은 2차 감염자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맞다”며 “이들은 이미 보건당국이 파악하기 전에 병원 입원실을 거쳐 감염이 된 사람들이라 열심히 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건당국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3차 감염자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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