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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란 말 적절치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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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준마는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어도 밭을 갈 때는 소보다 못하다'. 중국 청나라 때 고시(古詩)의 한 구절이다. 소나 말 같은 짐승도 각각의 장점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의미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적재적소란 어떤 일이나 자리에 알맞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그에 적합한 임무를 맡겨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인사의 기본 원칙이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정부 산하 기관장이나 임원에 내부 승진이 아니고 외부 인사(퇴직 공무원이나 민간인)가 임명됐을 때 소위 '낙하산 인사'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다만 퇴직 공무원이거나 조직 외부 인사라는 출신배경만을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정부 산하 기관의 기능은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아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 기능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부 산하 기관 인사에는 국정 철학에 맞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그 임명절차는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고, 임명된 사람이 필요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검증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참여정부는 이미 2003년 출범 이래 퇴직 공무원이 정부 산하 기관에 부적절하게 재취업하는 관행을 근본적으로 혁신해 나가고 있다. 우선 산하 기관장이 공석이 되면 기관장 후보는 공개모집을 원칙으로 하며, 민간위원이 과반수 포함된 기관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인선절차를 밟게 된다.

경력직 직원 채용에 있어서도 공개모집 원칙을 준수하고 채용범위와 자격기준 등을 사전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으며, 퇴직공무원은 공직 퇴직 6개월이 지난 뒤 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기본원칙에 의해 최근 한국토지공사는 10여 명의 사장 후보자 중에서 전문경영인 출신의 내부 인사를 발탁했다. 대한주택공사 사장 모집에는 교수와 전직 고위 관료, 기업인 등 29명이 응모해 서류심사와 면접 등 다양한 검증절차를 통해 선발한 바 있다.

이제는 정부 산하 기관장에 퇴직 공무원이나 외부 인사가 임명됐다고 해서 그 자체만 으로 부적절한 인사라고 무조건 비난할 게 아니라 해당 직위에 대한 적임자 여부와 인선 절차, 임명된 뒤 어떠한 업적을 남겼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소위 '낙하산 인사'라는 용어는 이제는 용도 폐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세계화.지식정보화 시대에 어느 조직에서나 핵심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 출신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인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다.

공직의 경우에도 국장급 이상 고위직 충원에 있어 유능한 인재를 외부로부터 수혈하기 위해 개방형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현재 정부 실.국장급 134개 개방형 직위 중 38%인 51명을 순수 민간인 출신으로 충원했으며 앞으로 그 비율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재를 얻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알맞게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활용할 때 비로소 인사(人事)로 만사(萬事)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정진철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