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폐쇄경제 한계점에|경제교류 제의 수락한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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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내정치·외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정책에서도 문호개방을 꺼리던 북한이 한국의 남북한 경제교류 제의에 선뜻 응한것은 북한이 폐쇄경제의 한계점에 와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우선 진단할수 있다.
북한의 국민총생산(GNP)규모는 한국의 4분의1 수준으로 그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35억달러(공산권 12억달러, 서방 23억달러)의 외채도 제때 갚지못해 두번씩이나 상환기간을 재조정받기도 했다.
이같은 경제적 어려움탓으로 김일성은 84년 신년사에서 북한의 경제실적에 대해 한마디언급도 하지 못했다. 그뿐아니라 지난5월에는 북한을 거쳐 일본을 방문한「노르돔·시아누크」공(반베트남 캄푸체아민주연정대통령)을 통해 일본과의 경제관계개선 희망을 표시했고 최근 평양을 방문한 「이시바시」(석교정사) 일본사회당위원장에게도 같은 뜻을 거듭 밝히기도 했다.
북한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다는 조짐은 이같은 김일성의 태도외에 북한측이 스스로 밝힌 여러가지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예를들어 북한의 84년 예산보고서에는 83년의 공업생산증가율이라든가 곡물수확신장률등의 통계가 빠져 경제적 낙후성을 의식적으로 감추려한 흔적이 역력했다.
83년의 북한경제가 매우 곤란했다는것은 이 한햇동안의 생산확대가 석탄·전력·채굴설비등 각종 플랜트, 화학섬유·합성수지·화학비료·직물·생활필수품·가공식품등, 10개부문 가운데 전력뿐이었다는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그 결과 북한의 83년도 수출은 82년도에 비해 대일본의 경우 17%가 줄어들었고 대 중공19.4%, 대소9.6%가 각각 감소됐다.
이같은 여건속에서 북한이 점점 커져만가는 한국과의 경제적격차에 초조감을 느낀것은 극히당연한 일이다. 이에따라 북한은79년8월 합영법제정과함께 자본주의경제체제를 도입하기 시작한 중공을 모방하여 지난달 8일 소위 합영법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지난7월 중공을 방문한 북한외상 김영남등 북한대표단에게 중공측은 그들의 경제개발특정지구를 보여주고 북한도 중공처럼 서방기술을 들여와 현대화계획을 강력히 추진하도록 권고했다는것이 합영법제정의 한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북한은 이같은 개방체제선언과 함께 지난13일 그들의 대외경제정책문제에 언급,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제적 연계를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고 강조, 종전의 폐쇄적 태도를 돌변시켜 주목을 끌기도 했다.
북한의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북한이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경제·기술적교류와 협조강화를 확고한 원칙으로 삼고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제적 연계를 부정하는것은 아니라고 주장, 북한과 경제적교류를 갖기를 바라는 「각이한 사회제도를 가진 모든 국가」들과도 무역및 통상관계를 발전시키는것이 「일관된 방침」이라고 내세웠던것이다.
이에앞서 북한의 중앙인민위원회 경제정책부위원장인 윤기복은 북한을 방문한 재일조총연 관계자들에게 합영법시행을위해 관계법령을 정비, 일본·미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아무런 제한이나 차별을 받지않고 북한에서 경제활동을 할수있도록 하겠다고 기업유치 선전을 한적도 있다. 평양방송은 이와함께 그들의 새로운 정책이 외국의 큰 호응을 얻어 이미 프랑스와 50층규모의 합작호텔을 짓기로 계약했으며 사회주의·자본주의국가를 가릴것없이 합작투자희망이 밀려들고있다고 선전했다. 일본과 미국등의 냉담한 반응을 예상하면서도 이들 자본주의 대국들을 직접 지칭하고「각이한 사회제도」를 내세운 것은 북한이 한국측의 경제교류제안을 받아들이기위한하나의 단계적발판으로보는 견해도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너무 침체되면 이를 극복하기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도발 가능성도 없지않다고 중공이 최근 미국에 경고했듯 남북한이 경제교류회담장에 마주 앉는것은 그 거래내용이나 실적보다도 한반도에 평화무드를 고조시키고 동아시아지역의 긴장을 풀어주는계기가 될수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남북한경제교류의 첫단계는 우리 정부가 구상하고 있듯「간단히 사고 팔수있는 물건들」부터 시작되겠지만 북한이 합영법을 통해서만 외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기 어려운 경제현실이므로 본격적인 외국자본도입의 전단계로 남북한경제교류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한의 현경제체제나 규모·생산성등으로 미루어 보거나 합영법에 대한 일본의 첫반응에서 지적됐듯이△믿을수 없는 통계△각종 설비노후화및 뒤떨어진 기술수준△농업개발의 지연과 사회간접자본부족등으로 외국기업들이 북한진출을 하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기때문이다. <홍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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