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저율인상 양으로 때워"|진통 끝에 결정된 추곡수매가·물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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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추곡수매가격은 작년의 동결에 이어 3%인상으로 최종확정됐다. 언제나처럼 농민들의 저율인상에 대한 불만에 반해 정부는 오히려 후하게 쳐줬다는 상반되는 입장이 또 한차례 엇갈리게 됐다.
정부측의 주장인즉, 공산품가격을 중심으로 물가안정이 계속되어 왔고 그나마의 지수물가를 올려놓은 것도 농산물인데도 추곡 수매가격을 3% 인상한것은 정부의 「중농의지」를 말해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설령 수매가격인상이 흡족하지 못한 수준이라 하더라도 수확량이 작년보다 늘어났으니 전체 농사수입은 더 늘어나지 않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수긍할 농민들이 얼마나될지 의문이다. 비록 일반공산품가격이 최근들어 안정되고 있는것은 사실이나 인건비를 비롯해 통계지수에 잡히지않는 농가의 기타 씀씀이들이 급속히 불어나고 있는 점등을 감안하면 3%인상은 아무래도 미흡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수매가격 억제이유로서 증산결과를 꼽는것 역시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증산을 통해 수입을 늘리는 것은 농민자신이 더많은 노력과 땅을 흘려 얻어지는 생산성향상의 과실을 갖는것인데 이것을 빌미로 수매가격 인상률을 누르면 증산의욕을 저해시킨다는 것이다.
추곡수매문제는 어차피 경제논리나 통계숫자로는 합의점을 찾기 어렵게 되어있다.
쌀의 생산비롤 추정하는 객관적인 기준부터 아직 마련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교의 싯점도 정부쪽은『작년의 동결에 비하면 3%도 높은 수준이 아니냐』는 식인데 반해 농민들은『근본적으로 적자영농인데 무슨 소리냐』고 항변한다.
특히 추곡수매에는 경제외적인 요소, 즉 민심의 문제가 항상 따른다. 최근 몇년동안 물가안정정책에 밀려 수매가격 결정과정에서 이같은 점은 거의 간과되었다. 오히려 그동안의 물가안정에 농산물가격안정이 결정적인 기여를해왔고, 그렇게해서 안정된 물가통계가 추곡수매가격을 억제시키는 명분으로 이용되어온것이 사실이다.
수매가격을 1% 을리는데 추가로 들어가는 돈은 90억원정도다. 사실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된다. 그런데도 정부가 수매가격인상억제를 고집해온것은 인상률 자체의 상징적인 의미에 크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측이 이번 수매에서 배려한것은 수매량을 작년보다 늘렸다는 점이다. 농협수매를 포함시킨 숫자이긴해도 작년보다 1백만섬을 더사들이기로한것은 실무당국자들이 당초생각했던것보다도많은 수준이다.
풍년작황에 따른 쌀값폭락현상이 우려되는데다 선거를앞둔 민심감안이 마지막단계에서 큰 변수로 작용한것같다. 정부수매량이 작년의 8백만섬에서 8백50만섬으로 늘어나게 되니까 돈으로 따지면 약5백30억원가량이 더들어가는 셈이다.
그러나 수매정책에 관한한 문제는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이번경우에도 수매량을 늘리기위해 농협의 수매량을 종래 50만섬에서 l백만섬으로 대폭 늘렸으나 이같은 편법을 언제까지 끌고갈수있을는지 의문이다.
50만섬 수매만해도 엄청난 손해때문에 농협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다시 그만큼을 더 사도록 한것이다. 세금을 들여 벌일 사업을 예산절감을 위해 민간기업에 떠맡기는 것이나 비슷하다.
일반미의 증산과 신품종의 감소추세 역시 커져가는 또 다른 불씨다. 전체 쌀생산량의 4할도 채안되는 신품종은 금년 경우에도 4%정도나 줄어들었고 이같은 추세는 해마다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 스스로도 쌀의 재고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품종을 줄여나가는 정책을 쓰고 있다.
결국 일반미의 비중이 높아질수밖에 없는데 정부수매는 여전히 신품종 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정부미의 조절에의한 쌀값의 기복완화는 더 어려워질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어쨌든 해마다 반복되는 진통임에도 정부의 수매정책은 양과 값을 정하는 일이 전부였다.
수매정책의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이 수십번 되풀이 되었지만 아직도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지조차 모르는 형편이다. 가뜩이나 제구실을 못해 쩔쩔매는 농협한테 짐을 떼어넘겨 손발을 더 묶고 있으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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