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년에겐 어려운 어휘, 고학년에겐 유치한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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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수학 교과서 펼쳐 보니

스토리텔링 수학 교과서는 이야기를 통해 수학적 원리와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실생활에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창의력을 키우는 게 기본 취지다. 현장 교사와 학부모는 “수학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억지로 끼워 맞춘 게 태반”이라며 “충분한 준비 없이 급히 도입돼 수학과 스토리가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온정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와 이정균 관산초등학교 교사의 조언을 받아 문제가 될 만한 수학 교과서의 실제 사례를 찾아봤다.

친숙하지 않은 설정, 엉성한 이야기

5학년 1학기 6단원 분수의 곱셈 p.198~199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학년 교과서의 ‘오봉산’은 이야기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 전래동화의 맥락을 끌어오긴 했지만, 이 안에 수학적 내용이 온전히 녹아있지 못하고 억지로 끼워 맞춘 듯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불필요한 정보가 지나치게 많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의원들이 하나같이 무슨 병인지 몰랐다’와 같은 전래동화의 흐름이 분수의 곱셈이라는 수학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수학의 원리를 찾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무리하게 수학을 스토리 안으로 끼워 맞춘 사례다.

내용과 연관 없는 정보 남발

4학년 1학기 4단원 분수의 덧셈과 뺄셈 p.138~139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분수를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1보다 작은 숫자’라는 개념을 실생활에서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체는 1인데, 그보다 작은 부분으로 나뉠 수 있고 그 부분들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분수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피자’는 분수의 개념을 알려주기에 적절한 소재다. 문제는 스토리를 ‘피자 만들기’로 삼았다는 데 있다. 분수를 배우는 데 피자 요리법을 가르쳐 주는 건 단원 내용과 아무 관련이 없는 불필요한 정보다. 피자 한 판을 어떻게 나누고 합칠 수 있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설정하는 편이 맞다. 같은 크기의 피자를 12조각과 6조각으로 나눌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한다.

나이에 맞지 않는 스토리

6학년 1학기 1단원 각기둥과 각뿔 p.34~35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평면도형과 입체도형의 관계를 알아보고 입체도형의 구성 요소를 살피는 단원이다. 스토리텔링은 ‘마법사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나 등장인물 없이 단순히 마법사 마을의 집 모양에서 입체도형을 찾아보고 꼭짓점, 모서리, 면의 개수를 세어보는 활동이다. ‘마법사 마을’이라는 이야기의 배경이 초등학교 1, 2학년에게 주어졌다면 주의를 집중시키고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6학년에게는 다소 유치한 설정이다. 이야기 자체가 학습 동기를 유발하기 힘들다. 1단원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 이야기라면 ‘실생활 속 수학적 문제 해결’이라는 창의적 단계로 나아가는 편이 적절하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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