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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행복한 적 없어" 장궈룽 유작 이도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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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개봉하는 공포영화 ‘이도공간(異度空間)’은 작품성을 떠나서라도 일단 시선이 쏠린다. 지난 4월 마흔 일곱의 나이로 자살한 홍콩 스타 장궈룽(張國榮)의 유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이 영화에서 정신과 의사 역을 연기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소문이 영화의 귀기(鬼氣)를 더한다.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장국영의 팬들에게는 매우 가슴 아픈 경험이 될 듯싶다. 40대 후반이란 사실이 긴가 민가 할 정도의 군살 없는 몸매와 우윳빛 피부를 보여주는 그는 여전히 "난 스타다"라고 자부하는 것 같다. 스크린 속에서 웃고 슬퍼하는 그는 너무나 생생해 오히려 죽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더구나 혼령에게 쫓겨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하면서 "지금까지 난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어"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이 영화를 영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게 한다. 투신 자살이라는 끔찍한 방법으로 이 세상과 하직해야 했던 그의 종말과 오버랩되는 탓이다.

새 아파트로 이사온 얀(린자신.林嘉欣)은 첫날부터 죽은 사람들의 원혼을 본다. 정신과 의사 짐(장궈룽)을 찾아간 얀은 점차 짐의 따뜻한 보살핌에 의지한다. 그런데 얀의 상태가 호전됨에 따라 짐이 혼령에 시달리게 된다. 겉으로는 침착해 보이던 짐에게는 불행하게 끝난 첫사랑의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공포 영화로서 '이도공간'이 남기는 감정은 무서움보다는 슬픔이다. 비록 공포 영화답게 요란한 효과음이 순간 순간 끼어들어 보는 이를 놀라게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영화는 못다 푼 원(怨)을 다독여, 균열이 일어난 일상을 제대로 끼워맞추는 데 집중한다. 원한을 품는다-귀신이 나타난다-한(恨)의 원인을 찾아 치료한다-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소위 동양식 공포 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밟는 것이다.

대신 이 영화는 짐과 얀 두 인물이 자신의 무의식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작은 뭉클함을 전해준다. 짐은 환자로 찾아온 얀에게 "귀신은 당신이 믿을 때만 존재한다"고 충고한다. 상처는 상처로 인식하는 한 계속 상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나 정서는 이렇듯 새롭지는 않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도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선뜻 '아니다'라고 말하기 힘든 건 역시 장궈룽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손목을 절단한 뒤 투신자살한 첫사랑의 혼령과 마주친 짐은 "이젠 널 잊고 싶어!"라고 소리친다. 그 말을 해야할 사람은 장궈룽이 아닌 것 같은데도 말이다. '성원''성월동화'의 시나리오를 쓴 뤄즈량(羅志良)이 연출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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