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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탐구] 구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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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여성용 구두업체인 ㈜항주의 채수동(50)사장은 요즘 올 가을에 선뵐 신상품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구두업체는 매년 9∼11월의 가을 판매 실적이 사실상 한해의 성적표가 매겨지기 때문에 늦어도 7월부터는 생간에 들어가야 한다.

채사장은 이를 위해 올들어 이탈리아에 세 번,일본에 두 번을 다녀오면서 해외 동향을 파악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올해는 불안한 구석이 많다. 전반적인 경기부진으로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살롱화가 구두 명성 이어=구두의 내수 시장 규모는 2조원, 물량으로는 2천5백만 켤레 정도다.

구두는 철저히 내수(內需) 중심 상품으로 수출은 미미하다. 금강제화.에스콰이아.엘칸토 등 3개 대형업체가 연간 매출 1조원을 차지하며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들 제화 3사는 30~40대 남성 고객의 취향에 발맞춰 1980년대 중반부터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면서 외환위기 이전까지 독과점 시장을 형성했다.

이렇게 된 데는 상품권도 큰 역할을 했다. 상품권 발행은 선금을 받고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상품권을 발행하는 대형업체 입장에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게다가 백화점들은 구두 상품권을 발행하는 업체를 잡기 위해 입점 수수료를 정상보다 10%포인트나 싸게 파격적으로 편의를 봐줬다.

그러나 여성용 구두는 중소업체들이 만드는 살롱화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살롱화는 명동, 이대 앞의 개인 구두점에서부터 명성을 쌓은 주문형 수제(手製)구두다.

90년대 중반부터 살롱화 시장이 급성장해 이후 소다.텐디.미소페.세라.조이.키사.엘리자벳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소다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이 5백억원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백화점에서 독자 브랜드로 판매하는 업체만도 30여개를 헤아린다.

이들 업체는 공장에 30명 안팎의 생산직원을 두고 하루 2백~3백 켤레씩 생산한다. 지난해의 경우 이들 살롱화 업체는 총 3천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했다.

대형업체의 정장용 구두가 평균 13만원인데 비해 살롱구두는 17만~20만원으로 비싸지만 유행에 민감한 젊은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

㈜소다 이민수 과장은 "대형 업체들에 비해 소비자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해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살롱 구두의 선전과 달리 5백여 비브랜드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 염천교.성수동.금호동.성남시에 몰려 있는 소형 업체들은 주로 대형 업체에 납품한다. 또 동대문.남대문 시장 등을 통해 자체상표로 물건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구두의 메카'라는 이름은 점차 퇴색해가고 있다. 물론 이들은 아직도 7천억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 할인점과 시장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건들이 넘쳐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 성수동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26개 업체 가운데 지난해 여섯개, 올해 두개 업체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을 정도로 어렵다"고 말했다.

◇고급 브랜드 개발이 숙제=구두 시장은 해마다 10% 이상씩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때와 장소에 맞게 신발을 신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그 원인이다.

하지만 97년 외환 위 기 때 홍역을 치렀고 지난해 말부터 다시 매출이 급감해 열병을 앓고 있다.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는 '외풍'이 한번 불면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영세하다.

디자인으로 차별화하지 못하고 제품이 엇비슷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자체 상품을 기획하기보다는 대부분 외국 디자인을 베껴 생산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파워도 없어 고전하고 있다. 이 틈을 비집고 발리.페라가모.프라다 등 해외명품이 한해 2백억원어치씩 수입돼 국내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업체들은 고급.기능성 제품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금강제화는 최고급 제품인 '헤리티지 리갈'의 매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악어가죽으로 만든 이 제품은 금강이 해외 명품 브랜드에 맞서기 위해 내놓은 것으로 한 켤레의 가격이 28만~1백만원이다.

금강제화의 이상원 이사는 "구두는 생필품이면서 패션 상품의 성격도 있다. 소득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수요가 창출돼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밖에 업체들은 정전기 방지 구두 등 기능성 구두에 이어 최근에는 주 5일 근무제 확산에 발맞춰 신세대 감각의 스포티한 구두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김상우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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